매일신문

[야고부] 대구 음식

서울 출신의 대구 모 대학 교수 한 분이 경산 시내의 어느 시장통 식당을 자주 간다며 그 집의 된장찌개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 했다. 밥 때가 되면 줄을 서야 할 만큼 손님들로 북적인다고도 했다. 역시 서울 출신인 부인이 했다는 말에 그 자리의 모두가 웃고 말았다. "대구 사람들도 맛있는 것은 아네요."

○…외지 출신으로 대구에서 사는 사람들 열에 아홉은 '대구 음식'에 손을 내젓는다. 이렇다할 別味(별미)가 없다는 거다. "하나같이 맵고 짠 음식투성이"라는 불만을 쏟아낸다. 하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20, 30가지 '육'해'공군' 반찬이 그득한 전라도 쪽 음식문화에 비하면 이곳 음식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게 대구의 맛'이라고 자랑할만한 것도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외지인에게 대구 사람은 거의 '味盲(미맹)' 수준으로 비쳐진다.

○…내륙도시에다 盆地(분지)다 보니 더운 날씨에 덜 상하는 짜고 매운맛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소고기국을 끓여도 서울사람들은 말갛게 담백한 맛을 내지만 대구에선 고춧가루를 확 뿌려 혀가 홧홧거릴 정도라야 "시원하다"고 한다. 김치도 타지방에선 주로 새우젓으로 삼삼한 맛을 내지만 여기선 시커먼 멸치젓에 고춧가루 양념이 더뎅이가 져야 "깨빈(개운)하다"고 한다.

○…여행자에게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는 발 닿는 곳마다 그 지방 특유의 '먹을거리'를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다. 맛있는 음식은 그 지역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고, 추억거리를 안겨준다. 대구도 하루빨리 '음식문화가 형편없는 도시'라는 汚名(오명)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외지 출신 대구 시민에게 대구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안겨줘야 한다. 대구 방문 외지인에게도 '대구만의 미각'을 선물하여 또다시 대구를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실 대구의 독특한 미각도 적지 않다. 이미 '따로 국밥', '동인동 갈비찜' 등은 널리 알려졌고 '선지해장국', '납작만두' 같은 것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단풍 든 콩잎김치'나 '부추김치'등은 다른 곳에선 맛보기 힘든 지역 고유 미각이다. 南道(남도)의 '갓김치'처럼 지역브랜드화해도 좋을 품목이다. 대구음식의 정체성을 찾고 도시 이미지 제고 및 관광상품화 등의 방안을 모색하는 포럼이 어제 열렸다. 묻힌 향토음식을 찾아내 名品(명품)으로 만들어내는 시민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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