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명절 군용열차의 추억

20년간의 군 생활 동안, 대부분 서울과 경기 북부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명절이나 기일이 되어도 고향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집안의 장남이자 외동아들이었지만 국가의 안위를 더 중요시하는 신분이고 보니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 늘 안타까웠다.

그 해는 명절 전날 휴가 명령이 떨어졌고 늦은 시간 서울역으로 향했지만 귀성열차를 타려는 사람으로 인산인해였다. 열차표를 구할 수 없어 난감해하던 나는 25분 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군용열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용산역에 도착하여 어렵지 않게 열차를 탈수가 있었다.

이 군용열차는 통일호 열차 객차를 두 칸 빌려 군인들을 수송하는 열차였지만 워낙 많은 탑승객이 승차하여 일반인들이 군용칸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밀고 들어왔다. 호송책임관들이 출입문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옆을 보니 칠순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나는 힘들어하시는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였고 몇 번을 사양하시는 할머니를 앉히는 순간 호송병은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할머니를 다른 칸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나는 "내가 일어서서 가고 할머니를 대신 앉히는데 무슨 범법이라도 되느냐!"고 물었고 호송병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객차 내에 있던 모든 병사들은 박수를 쳤고 대구로 내려오는 내내 객차 안은 따뜻했다. 대구에서 할머니와 함께 내린 나는 짐을 주차장까지 들어다 드렸고 택시를 타고 가시면서도 할머니는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추석은 아니었지만 보름달은 이미 다 차 있었고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택시의 꽁무니가 정겨웠다.

김완룡(대구시 남구 대명8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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