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남인희의 길 이야기

남인희의 길 이야기/ 남인희 지음/ 삶과 꿈 펴냄

2차대전 이후 독일의 경제성장을 우리는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를 오히려 '아우토반의 기적'이라고 부르길 원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베엠베(BMW), 아우디, 폴크스바겐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승용차 생산회사의 국제적 명성이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에서 제대로 성능이 입증됐기에 얻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도로, 철길, 물길 등을 아우르는 현대판 '길라비안나이트''라는 부제답게 지은이는 길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1977년 기술고시에 합격해 건설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래, 국가 SOC를 총괄하는 기반시설 본부장에 재직하고 있는 지은이는 지금까지 30여 년을 도로 정책을 세우고 길을 만드는 일에 몰두해 왔다.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길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써내려갔기에 다채로운 '길 이야기'가 펼쳐진다.

공직자가 하는 '길 이야기'라고 해서 기술적인 분야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학술 서적은 아니다. 지은이는 인문과학적 지식에도 능통해서 해박한 지식과 좀처럼 마르지 않는 정서로 길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크게 다섯 장으로 나누어진 책은 각 장마다 다양한 이야기로 읽는 이의 관심을 끈다.

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에서는 왜 길이 중요한지를 과거에 번영을 누렸던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고, 길이 가지는 경쟁력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당연히 로마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길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로마인들은 도로 건설에 힘을 기울였다. 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된 도로 건조는 2세기까지 장장 15만km에 달하는 도로를 건설했다.

19세기 말 개화기에 들어서야 도로의 중요성에 눈뜬 우리의 사례와 비교되는 점이다. 외세 침입을 두려워한 결과라 해석했지만 왠지 씁쓸함을 남긴다. 그나마 실학자들이 도로정책의 중요성을 간파했다는 사실이 위안을 준다.

제2부 '또다른 길-물길과 철길', 제3부 '길 위에서 생각한다', 제4부 '길을 알고 가자-오늘의 길, 내일의 길' 등의 내용도 인간역사에서 이루어진 '길의 확장', 길에 대한 지은이의 철학과 남다른 애정, 도로에 대한 유용한 정보와 앞으로의 발전방향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길에 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길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특히, 세계 시장을 향한 한중일 동북아 3국의 경쟁에 대한 이야기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전국에 고속도로 건설은 물론 철도 부설을 통해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는 중국의 사례는 우리를 긴장하게 한다.

과거 중국의 정허(鄭和), 콜럼버스나 마젤란이 세계를 향해 물길을 개척해 힘을 과시하고, 각 왕조가 도로망 정비에 힘을 쏟았던 것에 비해 우리는 이를 너무 경시해왔다. 196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그 필요성이 대두한 뒤 점차 상황이 나아졌지만 갈 길이 바쁜 지금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개발이 정체되고 있다는 점은 다시 고려해봐야 할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7X9 국가간선도로망 확충계획과 지능형 고속도로 건설과 21세기형 친환경 도로 건설을 향한 청사진, 아름다운 도로 선정 등 국가 차원의 중요도를 가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진다. 결국 도로 정책도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위해 어떻게 전략을 짜고 이를 추진해야 하는지가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온갖 길 이야기를 털어놓은 지은이는 마지막 '부록-우리 길의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길이 역사상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왔는지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풀어주고 있다. 역사자료로서 충분히 가치를 지니는 부분이다.

'나에게 길과의 만남이 숙명적이었다면, 그 길을 닦고 아름답게 가꾸는 건 내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는 지은이가 풀어놓는 '도로·철길·물길 이야기'가 전해주는 다양한 정보가 길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 일으킨다. 다만, 개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다 보니 한 번씩 주제에서 벗어나 보이는 이야기도 있어 아쉬운 느낌이 든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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