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절망 끝에 찾아온 '희망'…고물파는 노인에 온정 '계속'

"이렇게 많은 쌀을 만져보기는 내 평생 처음입니다."

지난 달 30일 오전 대구 서구 상리동 산기슭. 김수용(63) 할아버지(본지 22·26일자 4면 보도)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20kg짜리 쌀 10포대와 라면 20상자가 실린 화물차가 온 것이다. 쌀 포대에는 '힘내세요'라고 적힌 본홍색 리본도 달려 있었다.

"기뻐서, 감격해서, 말이 안나오네요."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잊었다.

"손주들을 위해서라도 꼭 힘 내시라."는 말을 전해 달라며 기자에게 전화 한통을 남기고 연락을 끊어버린 독지가는 사업을 하면서 법무부 산하 학교폭력예방분과위원회 사무장을 맡고 있는 김종국(53·대구 수성구) 씨. 그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의류업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최근 새로운 의류매장을 개장하면서 화환 대신 쌀과 라면을 받은 뒤, 들어온 축하물품을 몽땅 할아버지께 전달한 것.

"젊은 시절 고생해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습니다. 얼마되지 않는 물건인데 이렇게 알려지게 돼 부끄럽습니다."

13년 전부터 봉사활동을 해 온 김 씨는 지인들이 추가로 전해온 쌀과 라면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할 예정. "화환 대신 들어온 것들이라 많은 이들의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감사에도 불구, 김 씨는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편 지난 26일 매일신문을 통해 김수용 할아버지 돕기 계좌가 마련되자 닷새만에 600만 원이 넘는 정성이 쏟아졌다. 단체와 개인등 60여 명이 넘는 분들이 할아버지와 손주들의 따뜻한 추석나기를 바란다며 성금을 보냈다.

동사무소는 김치와 밑반찬을 가져다 줬고, 동네 복지관에도 할아버지를 찾고 도움을 주겠다는 분들의 문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

할아버지를 오랫동안 도와온 서구 상리동 소망모자원 신훈철 국장은 "평생을 성실하게 자식뒷바라지만 하며 살아오신 분인데, 결국 이렇게 하늘이 돕는다."며 도움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매일신문 보도 이후 생활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할아버지 표정이 밝아져서인지 아이들의 표정도 환해졌고 공부도 더욱 열심히 한다는 것.

쾌쾌한 냄새가 가득했던 방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으로 깨끗해졌다.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는 손녀 지영(13)이 방의 불빛을 보면 할아버지는 마음이 든든해진다고 흐믓해 했다. "처자, 고마워요." 할아버지 얼굴에 번진 웃음은 보름달보다 더 밝고 커 보였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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