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울한 '상업영화계의 독립영화'들

우려가 현실이 됐다. 콘텐츠보다는 고객에게 전달되는 유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확인됐다.

올해 추석 극장가는 한국 영화의 격전지로 변모했다. 더욱이 외화는 장쯔이 주연의 '야연', 청룽 주연의 'BB프로젝트', 애니메이션 '앤트 불리'뿐. 9일에 이르는 추석 연휴를 맞아 한국 영화는 '타짜' '가문의 부활' '라디오스타' '잘 살아보세' '구미호가족'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까지 그야말로 '피터지는' 전쟁을 시작했다.

'우행시'과 '가문의 부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난달 27일 개봉했다. 원래 28일 개봉이라고 고지됐으나 다들 슬그머니 하루 앞당겨 27일 개봉한 것(이미 하루이틀 된 관행이 아니다).

지난 주말을 보낸 1라운드 승부에서 '타짜'가 단연 앞섰다. 물론 전국 관객 116만 명이라는 수치는 시사회 이후 기대치에는 못 미친다. '가문의 부활'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각각 개봉 첫 주 125만 명, 120만 명을 모았기 때문에 이 수치는 생각보다 적게 느껴진다.

어쨌든 '타짜'는 그런대로 관객을 모았지만, '라디오 스타'의 관객 수는 듣는 이를 허탈하게 만들 정도다. 전국 21만 명. '라디오 스타'는 '타짜'와 함께 추석 영화 '투톱'으로 꼽혔다. 일반 시사회 반응도 영화 관계자 못지않았기 때문에 추석 극장가의 '복병' '히든카드'라는 평을 들었다.

320개를 확보했다는 시네마서비스의 발표가 믿기지 않을 만큼 21만 명이라는 수치는 너무 적다.

실제 지난 주말 '라디오 스타'는 멀티플렉스에서 단 1개 정도의 상영관밖에 볼 수 없었다. CGV를 가면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타짜'가, 메가박스를 가면 쇼박스가 배급하는 '가문의 부활'이 절반 이상 걸려 있다. '라디오 스타'의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가 아무리 CJ엔터테인먼트에 편입됐다 하더라도 어쨌든 CJ엔터테인먼트의 주력 영화는 '타짜'이기 때문에 일단 '타짜'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라디오 스타' 제작사인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는 "무대 인사를 하러 극장에 돌아다녔는데 1개관 밖에 상영하지 않아 시차가 많이 나면 관객이 바로 볼 수 있는 '타짜'나 '가문의 부활'을 택하더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어차피 '라디오 스타'는 입소문을 통해 서서히 번질 것을 예상하고 있어 본격적인 연휴 기간엔 찾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확신하면서도 "그래도 문제는 극장이다. 극장에 걸려 있지 않으면 어떻게 관객이 볼 건가"라며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코미디에 드라마를 괜찮은 수준으로 버무렸다는 '잘살아보세' 역시 배급사인 롯데시네마를 제외하고는 다른 멀티플렉스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흥행 결과는 뻔히 예상될 정도다.

뮤지컬 장르를 야심차게 택한 '구미호 가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두 영화는 공식적으로도 '고작' 200여 개 스크린을 잡았다.

'괴물'이 최대규모인 630개 스크린을 통해 개봉 후 흥행 성공을 거두자 스크린 독점에 대해 말이 많았다. '괴물'이 유발한 논쟁을 통해 시스템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이미 예상했듯 말로만 그칠 논쟁이고 우려였다.

오히려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을 제대로 밀어붙인다면 흥행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 때문에 배급사마다 '올인'의 경향을 띠고 있다.

'우행시'가 52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고, '가문의 부활'이 50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면서 이제 웬만한 영화라면 400개 이상은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올해 초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외부의 폭탄을 맞았던 영화계가 올해 말에는 스크린 독점 현상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투자를 겸하는 메이저 배급사가 극장에서도 독점적 시장 지배 위치를 갖고 있는 현실에서 이 회사들의 눈에 들지 않는 웬만한 영화는 모두 '상업영화계의 독립영화'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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