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내 자녀 교실에 주차 한다면

명절이면 곳곳에 펼침막이 내걸린다. '고향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즐겁고 편안한 명절 되십시오.' 등. 그 중 '명절을 맞아 학교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개방합니다.'라는 펼침막에 눈길이 갔다.

명절 즈음의 언론 보도들을 살펴보면 학교 개방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주차난 해소에 도움을 주었다.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새로운 관공서상을 정립했다. 지역 주민의 박수를 받는 학교 시설 개방 정책이다.'

시설을 개방하여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학교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휴일날 운동장에서 주민들이 축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구기 운동을 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일과 전후 운동장을 이용해서 걷고 달리는 주민들 모습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만날 수 있다. 밤늦게까지 운동장을 걷는 주민을 위해 조명등을 설치하는 학교도 많다.

주차장 개방 문제도 그렇다. 대구만 해도 2005년 12월 말 현재 차량 등록 대수가 84만 여 대, 승용차만도 62만 여 대나 된다. 게다가 명절이면 고향으로 오가는 차들 때문에 주차장은 더 부족해진다. 그 때 텅 빈 운동장을 제공한다니 여간 반갑지 않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평소에도 주차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운동장이 어떤 곳인가? 우리 자녀들이 뛰고 달리고 때론 넘어지고 뒹구는 곳이다. 그곳에 자동차가 들어가 오일도 흘리고, 냉각수도 뿌리고, 배출가스도 뱉어 놓는다. 돌아다니며 묻힌 온갖 미세먼지와 중금속 오염 물질까지 떨어뜨려 놓는다. 먼지 방지를 위해 설치한 스프링클러도 망가뜨린다. 차량 중량으로 땅을 울퉁불퉁하게 만든다.

그곳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뛰고 달리고 뒹군다. 온 몸에 흙을 묻혀 가며 뛰논다. 아무런 교육적 검토도 없이 운동장에 자동차를 세워서는 곤란하다. 운동장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다. 신체 활동이나 단체 활동을 하는 교실이다. 내 자녀의 교실에 주차를 한다면 박수를 치며 환영해야 할까? 특히 면역력이 약한 초등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아픔을 줄 수도 있는데.

부족한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안전하고 쾌적한 교육 환경을 지키는 일은 더 중요하다. 서울 어느 구청에서 37억9천800만 원을 투자하여 학교 운동장 지하에 공영 주차장을 건설했다고 한다. 우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한 일이다. 교육 환경을 지키면서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박정곤(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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