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교육 프리즘)인문학 위기와 예체능교육

인문학의 위기와 예체능 과목 경시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대학들이 주요 과목만을 비중 있게 반영하면서 예체능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가 과거와는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간, 기말시험이 다가오면 예체능 과목을 꼭 잘 쳐야 하는가, 포기해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질문이 빗발친다. 대학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 비중이 낮거나 미미하다면 안 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발상과 태도는 인문학의 위기와 너무 닮았다.

인문학 위기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근대로 들어선 이후 실용성을 최대의 가치로 삼으면서 인문학은 본격적으로 도외시되기 시작했다. 학문이 지나치게 순수 이론이나 관념에 치우칠 때 당장의 생산성을 중시하는 과학기술 시대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기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인 환경에서는 학문이나 지식은 주어진 과제를 처리해 나가는 일종의 기술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는 학문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면 주어진 문제나 목표가 과연 옳은가하는 가치판단의 문제는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간과되기가 쉽다. 문제는 학문의 지나친 실용화와 기능화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측면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 재앙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체능 과목의 경시도 마찬가지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은 지식기반 사회에서 사활의 관건이 된다. 예술적 감각이 결여된 인간에게서 창의력을 기대할 수 없다. 학창시절 인문적 교양을 쌓고, 예체능 교육을 통해 풍부한 감성과 건강하고 건전한 몸과 마음을 만든 사람만이 나중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교육 현장에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나 창의력 배양 따위는 없고 암기와 모방과 등급만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학에 입학한 우리 학생들은 객관식 문제의 답을 골라내는 기능공적 실력은 초일류 수준이지만, 대학 문을 나설 때의 전문가적 실력은 형편없다.

학생들에게 예체능 과목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시험에 관계없이 그 시간에는 그 과목을 즐길 수 있어야 하며, 시험을 칠 때는 시험 기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학교 또한 학생들이 마음껏 몰두하고 즐길 수 있는 수업모델과 평가방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젊은 날 예체능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과 감상능력을 길러 놓지 않으면, 훗날 성인이 되어 꿈꾸던 바를 성취해도 삶은 공허하고 허망할 것이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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