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의사로 산다는 것

한때 시들하던 의사 인기가 다시 상향하고 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사는 돈도 잘 벌고 정년이 없으며 자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굉장한 매력이란다. 그렇다보니 자연히 대학입시에도 반영이 된다.

예전에는 우수고등학교의 척도가 서울대에 몇 명을 진학 시켰는가였다. 언제부턴가 의대에 얼마나 진학 시켰나가 잣대라고 한다. 상위권 수험생들이 명문대 진학을 상담하면 일단 수능 수석부터 전국 의대 모집정원만큼은 의대 진학을 기정사실화 하고, 그 다음부터 셈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또 이공계를 졸업한 유능한 공학도들이 의과대학원에 다시 진학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환상적인(?) 의사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매스컴, 인터넷의 발달로 이젠 환자들도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당연히 요구 수준도 높다. 이젠 예전처럼 환자들이 의사한테 매달려 사정하지 않는다. 자기는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고객이니 그에 상응하는 진료를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의사는 한해 3천 명 정도가 면허를 취득한다. 공급이 많다. 따라서 종합병원이 아니더라도 중소병원에 취직하지 못하는 의사는 어쩔 수 없이 개원하는 실정이다. 당연히 병원은 많아지고 생존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의사의 희소가치가 줄어들었다.

저출산 고령화시대로 접어들면서 의료 수요자들도 변화하고 있다. 아이를 적게 낳다보니 소아과와 산부인과는 찬바람이 분다. 환자가 없어 문을 닫는 병원도 생긴다. 이런 실정이니 아예 전문과목을 내리고 일반의원으로 바꾸기도 한다.

또 하나 위협은 의료시장 개방이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외국의 병원들이 밀려들어오면 동네 병원들이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책상 하나와 청진기 하나로 환자를 보던 시대는 지나갔다.

나는 애당초 의사가 꿈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물건을 다루는 것을 좋아했다. 이리저리 만져보다 망쳐놓기가 일쑤였다. 그것이 즐거웠다. 그래서 늘 공대를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의사였다. 할아버지 생전에 아버지가 의사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당신이 그 뜻을 받들지 못해 '원풀이' 해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기도 하셨고.....

어쨌든 아버지를 이기지 못했다는 핑계로 의대에 들어간 지 20여년이 지났고 개원한지도 수년이 되어간다. 생각지도 않던 의대에 들어가 잘 적응하지 못해 힘든 시절을 보낸 것도 이젠 지난 이야기다. 난 이미 의사로 살아가고 있다. 요즘 같이 조기퇴출과 실업자가 늘어나는 시절, 아버지 덕분에, 내손으로 아침저녁 병원 문 여닫으며 살아가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올해 칠순이신 부모님 두 분 모두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서중교 에스제통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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