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새터민, 희망을 품는 그 날까지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 아닙니까? 공부한 만큼 성공하고 일한 만큼 돈도 주지안슴메? 아무리 어려워도 북조선만 할까요?"

지난 달 달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40대 탈북여성은 '희망'을 얘기하며 기자의 손을 잡았다. 올 초 중1인 둘째 아들(18)이 폐결핵과 장염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 아들이 이제 수학 문제를 풀고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 모습이 여간 대견하지 않다.

"제가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북조선에서 큰 아들을 못 먹여서 죽이고 군인이던 남편도 죽고.... 북한에서 살기가 죽기보다 싫었어요." 그는 "중국에서 떠돌다 TV에서 훨씬 잘 살고 '지상낙원'처럼 보이는 대한민국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투박한 두 손에 담긴 '희망'이 안스러워 보였다. 남한의 현실은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만난 탈북자들은 결혼식은 올려도 혼인신고는 미루고 있었다. 정규직 취업은 꿈도 못 꾼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4대보험에 가입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그들의 정착지원금을 끊는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5만 원짜리 일용직으로 건설현장에 출근하고 식당 주방에서 솥을 닦았다. 게다가 "우리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나 "혹시 간첩 아닐까"하는 경계의 눈길이 그들을 좌절케 한다. 탈북자들은 초기정착금 300만 원을 브로커비용으로 빼앗기고 그후 몇달간 생활고에 허덕이기 일쑤였다.

그들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일을 하면 인센티브를 주고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도 줘야 한다.

"둘째 아들은 경찰, 셋째는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데 탈북자도 됩니까? 과외도 해야 하나요?" 자식만이 희망인 그 탈북여성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후원계좌: 대구은행 038-05-002942-4 (사)자원봉사능력개발원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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