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 대법원장 발언 파문과 공판중심주의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방법원을 순회하면서 쏟아낸 발언들이 법조계 안팎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사법의 중추는 법원이고 검찰과 변호사단체는 보조기관", "민사재판에서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변호사 자료는 상대방을 속이려는 문서" 등 연일 거친 발언을 해 일약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대법원장이 사과의 뜻을 표함으로써 갈등은 외견상 봉합된 듯하지만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공판중심주의라는 사법개혁의 과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파문의 원인이 무엇이고 법조계의 관행이나 개혁 방향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법학을 전공하고자 한다면 구체적인 용어나 제도적인 문제까지 자세히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어떤 쪽을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대법원장 발언에 대한 평가

이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한 반응은 명확히 양분된다. 사법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다소 거칠더라도 명확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나 사법부의 권위를 높이는 데만 치중한다는 부정적 비판이 그에 못지않다.

대법원장 발언이 잇따르면서 우선은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 일로 법원을 위해 크게 한 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거나 전략에선 성공했지만 전술에선 실패했다는 이 대법원장의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검찰에 사과성 발언을 하면서도 검찰이 증거분리제출 제도를 전국적으로 실시키로 한 것을 겨냥해 역시 검찰이 우리보다 한 수 위다라는 말은 사법계 수장으로서의 권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이념적으로는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지만 언행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행태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신문 칼럼)

이 대법원장이 임명 당시 코드 인사 논란을 빚었던 사실을 근거로 정권과의 연관성을 거론하기까지 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사법부가 독립을 지키지 못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정권에 맞서 투쟁한 사람들의 공로도 일정 부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이 현 정권 담당자들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인상을 준 것은 사법부 수장의 위상에 비춰 볼 때 부적절했다고 본다.'(신문 사설)

이 대법원장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입장에서는 다소간의 말실수를 인정한다고 해도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몇 어구와 직설적 화법을 이유로 본질을 왜곡하거나 비켜가선 안 된다. 공판 중심주의는 우리 사법 시스템이 지향해야 할 개혁 방향이라는 점에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을 통해 사법부의 신뢰를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발언의 진의에 눈감은 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봐선 안 된다.'(신문 사설)

사법 개혁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문제 제기의 성격이 강했다는 평가도 보인다.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제출하자, 이를 둘러싸고 법조계 내에서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이후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의 문제는 그 조서가 적법하게 작성되고 변호인 참여 등이 이루어지면 증거능력을 인정한다는 식으로 타협이 이루어진 바 있다. 그렇지만 이 절충된 법안조차도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법원과 검찰 실무에서 조서재판의 관행은 온존되고 있다. 대법원장의 이번 발언은 공판중심주의가 굳건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현실에 충격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신문 칼럼)

▶공판중심주의 추진과 문제점

이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비판하든 동의하든 그의 본의가 공판중심주의와 맞물려 있다는 데 대해서는 큰 이견이 보이지 않는다. 공판중심주의는 용어의 의미 그대로 법정에서의 변론과 증거 확인에 사법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원이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조서에 의존해 판결을 내리던 관행을 깨뜨리고 법정에서의 당사자 진술과 변호인의 변론을 통해 판결하는 것을 말한다.

공판중심주의는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널리 인정되는 원칙이다. 우리 법원과 검찰도 원론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며, 국회에 계류중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도 이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론에 들어가면 의견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대법원장의 발언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지나친 법원 우위적 발상, 미숙한 여건 등을 문제로 내세운다. '형사사법 제도의 문제는 피의자.피고인의 인권보장과 아울러 범죄자의 처벌 및 피해자의 권리구제라는 상반된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반된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는 기능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옳지, 수사기관의 역할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에서 출발해선 안 된다. 대법원장의 발언대로라면 수사 절차가 무시되고 아예 처음부터 법정에서 다시 조사를 진행해야만 한다.'(신문 칼럼)

구체적인 반박 자료와 주장들도 다양하게 쏟아진다. 지난 5월 공판중심주의 도입 뒤 기존 서면 위주 공판에 비해 자백 사건은 3배, 부인 사건은 5배의 시간이 걸렸다는 대검찰청의 발표에는 '실체적 진실의 확보와 인권보호도 중요하지만 우리 헌법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보장하고 있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법정 증설은 물론 현재 2천 명 선인 법관 수를 최고 10배까지 늘려야 한다는 견해도 언급된다. 현재의 법원 인원과 조직으로 재판 진행이 불가능하리라는 현실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의 근거가 된다. 검찰이 유죄를 증명하기 위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과학 수사를 강화하고 전문적인 장비와 인력을 보강하기가 어려운 현실도 마찬가지로 이야기된다.

다소 방향이 빗나가 보이지만 이 같은 여건을 법조계 내부의 전반적인 이기주의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시키는 주장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깊은 국민들에게 속시원하게 들리기도 한다. '법조삼륜이라는 말 뒤에 놓여 있는 법조 동업자 의식은 없어져야 할 현상이기도 하다. 법률가의 지위가 대국민 법률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법복 귀족으로 유지되고 있기에, 법률가들은 그 수를 늘리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직역과 관계없이 단결하여 반대하고 있다.'(신문 칼럼)

이번 파문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법조계가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따끔하게 들린다. '최근의 사태는 아직도 사법 개혁의 본질 및 방향에 대해 법조인들의 문제의식이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는 법조인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국민의 군으로 볼 때 가장 훌륭한 법조인은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조인일 뿐이지 그 직역이 법원에 속하건 검찰에 속하건 아니면 변호사이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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