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국인 생생 여행체험] 파키스탄인 후센샤 씨 의성 벌초체험

한국에 온 지 2년2개월 된 세옛 모센 후센샤(27.파키스탄 출신 근로자) 씨. 추석을 앞두고 매일신문 주말팀과 함께 특이한 체험에 나섰다. 바로 벌초다. 외국인이 묘지 주변에 보기싫게 자라난 잡초를 뽑고 예초기로 다듬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체험은 이미 시작됐다.

세옛 씨의 근무가 없었던 지난 2일 대구 북부정류장 앞을 출발해 오후 2시쯤 의성군 비안면 이두2리의 한 문중 묘역에 도착했다. 의성 비안농협(조합장 김제칠)에서 벌초 대행을 맡고 있는 손병태(58) 씨가 낫, 갈구리, 예초기 등 벌초 도구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대부분 묘들은 벌초작업이 끝났고 몇몇 정리되지 않은 묘들이 눈에 띄었다. 일단 낫을 손을 든 세옛. 묘 왼쪽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왼손에 움켜쥐고 쓱쓱 베어낸다. 제법 괜찮은 솜씨다.

그는 주변 칭찬에 슬며시 웃었다. "파키스탄에도 알라, 모하메드 그리고 조상에 대한 경배의식이 있습니다. 1년에 한두차례 할아버지 묘를 찾아가 주변에 자라는 풀을 낫으로 베어봤습니다." 하지만 평지에 비석만 있는 묘이기 때문에 한국의 벌초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세옛 씨가 낫으로 무덤 한쪽에 무성히 자란 풀들을 베어내자 손 씨가 한 쪽으로 옮겨놨다.

이제 예초기에 도전했다. 처음 사용해보는 원동기라 시동을 거는 순간 겁이 났다. 모터를 어깨에 매고 스위치를 누르자 양날로 된 커트기가 선풍기처럼 쌩쌩 돌아가며 빠른 속도로 풀을 깎아낸다. 그는 마치 미용실에서 전동 헤어커트기로 남성의 짧은 스포츠머리를 깎는 듯하다고 느낌을 이야기했다.

처음엔 놀라서 슬쩍 뒤로 물러선 그는 손 씨가 커트날을 평평하게 유지하는 요령을 가르쳐주자 이내 신이 났다. 힘든 줄도 모르고 2개가 붙어있는 묘 주변을 깔끔하게 다듬었다. 또 갈구리를 가져와 여기저기 흩어진 잡초들을 한 쪽에 가지런히 모아둔다. 멀리서 본다면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손 씨는 "그렇지 않아도 일할 사람이 없는데 벌초대행 수제자로 키워야겠다."고 농담삼아 말했다.

1신간 여 만에 벌초가 끝나고 묘 차례상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멀리서 온 후손들은 벌초 후 과일, 명태 등 간단한 안주와 술을 조상에게 올린다고 하자 그는 "아하!" 라며 무릎을 친다. "정말 좋은 풍습입니다. 먼저 죽었지만 나를 있게 한 조상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존경을 표한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모습"이라며 "후손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고 했다.

그는 "절대 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인들 역시 조상을 찾아가 예의를 갖추지만 꽃을 꽂아두고 코란(이슬람 성경)의 좋은 구절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라며 "특히 술은 절대 먹지 않으며 먹을 거리도 묘 주변에서는 구경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벌초가 끝난 뒤 주변에 넓게 펼쳐진 황금빛 들녘도 구경거리였다. 세옛 씨는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인 벼를 보며 "풍년이 들었네."라며 좋아했다. 쌀이라고 가르쳐주자 "파키스탄 쌀은 길이가 길고 맛이 건조한데 비해 한국 쌀은 짧고 통통하며 물기가 많은 게 특징"이라고 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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