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엔 부인을 쫓아낼 수 있는 '七去之惡(칠거지악)'과 쫓아낼 수 없는 장치인 '三不去(삼불거)'가 있었다. 남성만이 이혼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셈이지만, 갈 곳이 없는 부인은 쫓아내지 못하게 돼 있었다. 우리 사회는 가치와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 있는 걸까. 조선시대의 풍속은 그야말로 아득한 옛 얘기다. 요즘은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져 있을 때가 적지 않다. 離婚(이혼) 문제는 그 중 눈에 띄게 그렇다.
쪊이웃 일본에서의 노인 이혼 바람인 소위 '나리타 이혼'이 바다 너머 불같이 여겨지던 게 그리 오래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黃昏(황혼) 이혼'이 일상용어로 정착된 지 한참 됐으며, 갈수록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연세가 든 여성들의 이혼 신청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隔世之感(격세지감)을 안겨준다. 女權(여권) 신장과 행복추구권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징표이기도 하겠지만….
쪊황혼 이혼이 新婚(신혼) 이혼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의 이혼 신청 2천58건 중 결혼한 지 26년 이상이 된 부부가 391건으로 19%나 돼 최고치를 기록했다. 결혼 후 1년 미만 4.1%, 1~3년 9.4%에 비하면 엄청나다. 또한 황혼 이혼 다음이 결혼 후 11~15년의 중년층(15.7%), 16~20년의 장년층(14.6%)으로 나타났다.
쪊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이혼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는 그런 걱정을 無色(무색)하게 만든다. 장'노년층의 경우 과거에는 자식들 보기 민망해서라도 이혼을 꺼리는 경향이었지만 이젠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破鏡(파경)에는 오랜 결혼 생활이 보루가 되지 않는 추세로 보인다. 전체적인 이혼 사유로는 '성격 차이'가 39.3%로 가장 많다는 점도 결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쪊20대엔 결혼이 사랑으로 이루어지나 나이가 들수록 그 빛깔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대체로 30대엔 노력으로 지탱하고, 40대엔 인내로 꾸려나가며, 50대엔 체념으로 살다가 60대에 이르러서는 감사하게 된다고 한다. 황혼 이혼 바람은 高齡化(고령화) 사회가 급진전되면서 노인들이 늦게나마 행복을 추구하고 '삶의 질'에 눈을 돌리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평생 偕老(해로)하는 인생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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