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백종식 作 단풍은 부끄러워서 더욱 아름답다

단풍은 부끄러워서 더욱 아름답다

백종식

나무는 부끄러움을 안다

부끄러워 할 일이 전혀 없음에도….

계절 따라 갈아입는 새 옷의 신선함으로

만물에게 베푸는 그늘의 은혜

그 아름다운 마음씨 하나만으로도

큰 찬양 받아 마땅하지만

오히려, 내게 주어진

한 해의 임무를 끝까지 다하지 못하고

일찍 옷을 벗는 미안함을,

그 알몸을 누리에 드러내야 하는 생리를,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겹겹한 잎사귀들이 더 깊이 숨어

더 붉게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사람아, 우리 모두도 부끄러워하자.

저 산에서, 저 들에서, 혹은

요즈음 우리네 주변에서, 사죄하듯 온통

미안해 미안해 부끄러워하고 있는

부끄러울 것 정말 전혀 없는

저 겸손한 나무들처럼…

진정 부끄러운 우리들, 사람아!

감정은 대체로 느끼는 것이다. 다만 '부끄러움'은 '느끼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이다. 인간만이 가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가을에는 나무도 '부끄러움'을 안다. '만물에게 베푸는 그늘의 은혜/ 그 아름다운 마음씨 하나만으로도' 찬양 받기에 충분한데도 나무는 부끄러워한다. '그 알몸을 누리에 드러내야 하는 생리를' 부끄러워하여 붉게 물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사람들이 그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아니 모른 체하고 있다. 낯 뜨거운 짓의 부끄러움 앞에 너무나 당당하다.

그래서 시인은 이 가을에 '사람아, 우리 모두도 부끄러워하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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