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지를 찾아서] 계성학교·대구YMCA

3.1 운동을 전후한 시기, 대구의 개신교계는 사회변혁의 중심에 놓여있었다. 국권을 잃은 지, 10년의 세월 동안 죽은 듯하던 이땅의 젊은이들이 가슴에 숨겨돈 민족애의 불씨를 지펴 찬란한 역사의 불꽃을 피웠다. 그 와중에 대구 계성학교가 있고, 교남기독교청년회(대구YMCA 전신)가 있으며 대구남성정 교회가 있다.

1906년 대구 남성정교회 구내에서 시작된 계성학교는 경북지방 신교육의 등대였으며, 이 지역 기독교 발전의 큰 발자취이기도하다. 계성학교는 1908년 아담스관(사진1)이 준공됐고, 이만집은 계성학교 첫 한국인 교사로 선임됐고, 교감으로 승진돼 교무를 총괄하게 됐다. 계성학교의 아담스관은 영남지역 첫 2층 신식건물로 경북지역 교회 대표자들의 회의가 단골로 열렸다. 3.1 운동때는 아담스관 반지하(사진 2)에서 독립선언서를 프린트하기도 했다.

남성정 교회 2대 장로이며, 계성학교 교사이기도 했던 이만집 목사는 남성정 교회 교역자들과 당회원들, 그리고 대구주재 선교사들과 같이 교남기독청년회 설립발기위원회를 구성하고 1918년 9월 15일에 조직했다. 발기위원은 대구 개신교계 영도자들인 이만집 김태련 백신철 김덕경 정광순 이재인 등과 방혜법 부해리 별리추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의 발기에 의해 영남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인 대구에 설립된 교남기독청년회 회장에는 이만집, 부회장에 정광순씨가 선임돼 경북지방 청년운동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대구YMCA초기회관은 지금, 초기 교남기독교회관이라는 간판하나 없이 쓸쓸하게 방치돼있다.

최미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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