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관공서·대학가 '국적불명' 이름짓기 극성

행사.단체 이름 외래어 무분별 남용

"'카우'(cow)라면 '젖소'니까 소싸움엔 못 나와도 소는 소인데 '붕가'는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지난 3월 경북 청도에서 열린 청도소싸움 축제 캐릭터인 '카우'와 '붕가'를 접한 한 대학생은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주최 측은 이 이름을 "서퍼들이 파도마루에 올라탔을 때 '카우어벙거(cowabunga)'라고 외치는 데서 따 왔다"고 밝혔지만 전통 소싸움을 계승한다면서 캐릭터 이름을 영어에서, 그것도 굳이 서핑 용어에서 따와야 했는지 의문이다.

관공서에서 주최하는 축제, 행사 등에 영어.외래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행정당국 관계자들은 '마이동풍'격으로 최근 '국적불명' 이름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대구시는 2년 전 시의 모토를 'Colorful Daegu'로 정한 뒤 지역 대표 축제인 '달구벌 축제'를 'Colorful Daegu Festival'이란 영문 이름으로 바꿔 2년째 열어오고 있다.

지난 1일 막을 내린 2006년 축제의 세부 행사 명칭은 '프린지 페스티벌'(아마추어 문화예술제), '패션시티'(야외패션쇼), '대구인물PUPPET'(대형인물모형 거리 퍼레이드) 등으로 외래어 일색이고 행사장에 설치된 현수막 일부에선 한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는 지난 3월 창단한 시 합창단의 이름은 '대구시 컬러풀 코러스', 6월께 열린 음악회의 이름은 '컬러풀 시민사랑음악회'라는 식으로 각종 단체나 행사 이름에 '컬러풀'이란 영문 단어를 빼놓지 않고 있으며 시공무원들이 정장대신 자유로운 복장을 하는 날조차 '컬러풀 대구 데이'라고 부르고 있다.

시는 또 매년 5월께 열리는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에선 지난해 '東醫寶路 Since 1658'(1658년부터 있어온 동양의학의 보배로운 길이라는 뜻)이란 '정체불명'의 주제를 내놓은데 이어 올해에도 '한방웰빙로드 2006'이란 이해하기 힘든 문구를 내걸었다.

경북 지역 축제들도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이나 '고령 대가야 페스티벌', 문경 마운틴 페스티벌' 등 외래어 이름이 많았고, 세부 행사 이름도 'Mask 벨리댄스', '고분 데이트'(고분답사), '열두줄 샐러드바'(지역농산물홍보) 식으로 국적이 분명치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 같은 현상은 민간이나 대학가 행사 및 사업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4일 경북대에서 열린 패션 전시회의 이름은 'DREAM OF FASHION ; Beyond the Fashion Reality 展'으로 아예 한글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고 같은 달 21일 열린 대구.경북 NGO 박람회의 이름은 'BINGO'(Beautiful, I, NGO)였다.

또 경북대에서 운영 중인 산학협력중심대학사업단의 이름은 'ALICE'(Academic Links to Industry for Collaborative Evolution)고, 대구 가톨릭 대학이 운영하는 여성과학기술인 양성사업 센터의 이름은 'WISE'(Women Into Science and Engineering)다.

이에 대해 시민 김모(28.북구 산격동)씨는 "올바르고 아름다운 한글 사용의 모범이 돼야 할 관공서, 대학이 오히려 한글 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듯 해 보기에 좋지 않다"면서 "한글보다 영어 이름이 '쿨'하고 고상하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북 포항 양학중 이귀숙 교사는 "외래어 남발은 한글 오염과 우리 문화의 정체성 위기를 의미한다"면서 "우리말을 바로잡을 수 있는 문화운동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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