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논술식 평가의 허점

2008년부터 주요 대학의 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이 높아진다고 하여 논술이 수험생과 교사의 화두가 되었다. 논술을 잘 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지식의 축적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기본이다.

그것만으로는 조금 미흡하고 창의적 발상과 논리적 사고도 필요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창의성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거친 생각을 논리라는 다소 갑갑한 틀로 정제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창의적 발상은 기존의 검증된 지식의 바탕 위에 설 때 비로소 파괴력을 가지고, 비약이나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논리적 사고도 기존 지식의 토대 위에 서야 비로소 생명력을 갖기 때문이다. 물론 코페르니쿠스적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논술은 결국 주어진 테마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글로 옮겨 놓는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은 다소 기술적이고 형식적일 수 있지만 글로 옮겨놓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가지런히 정리해 놓아야 비로소 남이 알 수 있고 평가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논술은 어쩌면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교육을 논술식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은 논술의 본래적 특성에서 파생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또 논술식 평가가 다른 평가방식보다 이론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에도 이의가 없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경우의 평가를 반드시 논술식으로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평가과정에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인한 오류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학문의 불완전성, 평가자의 수미일관된 평가척도의 유지 불가능성, 상이한 관점의 상대적 가치로 인한 비교불가측성 등을 고려한다면, 논술식 평가가 반드시 최선은 아니다.

논술식 평가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루어져야 하고, 객관식 평가 또는 단답형 평가가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객관식 평가 잣대로 선출된 자들이 그들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객관식 평가로 고득점을 받았다면 그 분야의 논술 능력도 뛰어난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객관식 평가로 선출되었던 과거 명문대학 출신들이 논술식 평가로 선발되는 사법시험을 석권했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험결과에 대한 합목적성 정도는 어떤 평가방법을 취하더라도 대동소이하다는 말이다. 또 우수한 인재들이 특정한 분야에만 서열대로 정확히 배정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골고루 배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면, 시험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하는 것은 분별성 보다는 공정성이나 객관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정성이나 객관성 측면에서 본다면 논술식 시험은 다소 불합리하다. 논술식 시험의 평가 역사가 가장 오래된 사법시험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합격정수의 이삼배수를 1차 객관식 시험에서 선발한 다음, 2차 논술식 시험에서 최종 합격인원을 선발하고 있다.

배점이 큰 논술 문제는 줄여가고 배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약술형 문제가 늘고 있는 최근의 동향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논술식 평가는 평가대상이 비교적 적고 경쟁률이 낮을 때라야 유의성이 있다는 결론은 다소 비약일까?

대학입시를 논술식 평가로 실시하기에는 그 대상 인원이 너무 많고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도 떨어진다. 논술식 평가의 자의성으로 인하여 부정의 소지도 너무 많다. 선풍기로 시험지를 날려 그 비행거리로 점수를 준다는 고시가의 우스갯소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날 밤의 과음이나 부부싸움이 여러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기에는 우리들의 삶이 너무 소중하지 않는가.

오철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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