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자 산악인이며 엔터테인먼트 기획가인 박인식(朴麟植·55) 씨는 자유인을 꿈꾸는 바람 같은 사람이다. 인터뷰를 굳이 사양하는 그를 서울지하철 안국역 1번 출구 뒷골목에 있는 와인바 로마네꽁띠에서 만났다. 로마네꽁띠는 개화파 홍영식의 생가를 개조해 박 씨가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문화인들 사랑방이다.
그는 좋아하는 것이 무척 많다. 산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고, 와인을 좋아하고, 좋은 사람을 좋아하고, 우리 것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고향인 청도 이서를 좋아한다.
삶이 고단하면 그는 서울역으로 가서 오후 2시발 청도행 새마을호에 몸을 싣는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다. 청도역에 내리면 먼저 단골집에서 추어탕을 먹고, 이서행 버스를 타고 마을 들목에 있는 여관으로 가서 여장을 푼다. 해가 설핏 져서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할 어둠이 내리면 홀로 마을 여기저기를 배회한다. 숫기가 없어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늘 쑥스럽다. 가족이 프랑스 파리에 살아 절반은 파리에서, 절반은 서울에서 생활하는 그에게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불면증이 있는 그이지만 밤 11시 40분 다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으면 4시간 동안 죽음 같은 깊은 잠을 잔다. 고향이 온전함을 확인한 안도감 때문일 게다. 아직 개발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인 이서가 그래서 고맙다.
그는 경북중에 전교 2등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모범생으로 살기에는 너무 조숙했다. 원래 세상이 부조리한 모순덩어리라고 생각해 그 모순으로부터 늘 자유롭고 싶어 했다. 남들 하는 것은 무엇이든 거부했다. 결석을 친구들이 학교 가듯 했다. 1학년 때 담배를 배웠다. 영어가 웬지 마음에 들지 않아 영어수업 거부운동을 벌였다. 반항아는 1학년 말에 전교 꼴찌가 됐다.
3학년 때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이승구 서울서부지검장과 같은 반이 되었다. 바로 앞자리였던 김 지사는 천재이면서 꼴찌인 친구를 안타깝게 여겼다. 예상 시험문제를 가르쳐줬고 그래도 답을 쓰지 않자 커닝페이퍼를 만들어 줬다. 그런다고 커닝을 할 위인이 아니었다. 어린 철학자인 그에게 시험 답안 하나 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인식이는 1주일만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다."며 경북고에 원서를 쓰게 했다. 대단한 신뢰다. 선생님의 기대와 달리 낙방하고 2차로 대륜고에 응시해 합격했다. 연세대에 들어갔다.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자 그는 담배를 끊었다.
그에게 꿈이 2개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제법 그려 화가가 될까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고교 때는 산악인이 되고 싶었다. 히말라야 한국 원정대가 대구에서 가진 사진전시회에서 자유를 꿈꾸는 영혼을 본 것이 계기였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산악부에 들어갔다. 히말라야 원정에 여러 번 참여하고 알프스 원정대장도 했다. 알프스에 매료돼 그곳에서 1년간 살았다. 산악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김근원 선생이 4개월여 알프스를 찍을 때 길잡이 노릇도 했다.
산과 인연은 또 있다.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시절, 월간 산의 창간 멤버로 일했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스스로 월간 '사람과 산'을 창간하고, 산악문학상을 제정하고, 인수봉에서 산상음악제도 열었다. 문경새재에서 2년간 산악영화제도 열었다.
그에게 너무도 그리운 사람이 있다. 발해 뗏목 탐사 대장으로 바다를 건너다 일본 해역에서 불귀의 객이 된 고 이덕영 형. 대구농고를 졸업하고 울릉도에서 농사를 짓던 형과 그는 희미해져 가는 민족정기와 혼을 불러 일으키는 실천 운동을 펼치자고 의기 투합했다. 푸른 독도 가꾸기 운동을 벌여 독도에 야생초와 나무를 심었다. 국제법상 나무, 물, 사람이 있어야 암초가 아니라 섬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당시 없는 게 나무였다.
서울 인사동과 전국 사찰에 토종식물 보내기 운동도 펼쳤다. 가장 한국적이어야 할 그곳에 외래식물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농(農)심마니 운동도 둘이서 시작했다. 산삼이 나지 않는 산은 죽은 산이라고 보고 인삼을 산에 심는 운동이었다. 재배삼의 발상지인 전남 화순군 동복면 모후산을 시작으로 매년 2회씩 39회나 전국 산에 인삼을 심었다. 삼은 무럭무럭 자랐고 어떤 마을은 20여 가구 주민 모두가 심마니가 되기도 했다.
20주년이자 40회째인 농심마니 행사는 이달 27일부터 울릉도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덕영 형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울릉도의 풀은 식용 아니면 약초로 못 먹는 게 없을 정도로 땅 기운이 좋은 곳이란 점도 고려했다. 덕영 형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제를 지내고 추모 산행을 할 요량이다.
그는 대하소설 백두대간을 쓰고 있고, 농심마니 회원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도 곧 낼 계획이다. 문경에서 중단된 산악영화제를 북한산에서 재개할 생각이고, 대구에 백남준-피카소미술관을 만드는 일도 뒤에서 돕고 있다.
그는 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500만 명을 묶어 산악문화재단을 만들려 한다. 그리고 덕영 형이 남긴 숙제인 발해 뗏목 탐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갖고 있다. 하지만 뗏목 탐사만은 주변에서 말려야 할 듯하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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