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께서 뒤집어 쓰고 있는'빨갱이'라는 억울한 오명을 이젠 저희가 풀겠습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8일 울진 기성면 정명2리 속칭 어티마을 야산. 영덕 영해면 원구리가 고향인 백순국(57·부산)·백운락(65·경산) 씨는 아버지 백철진(당시 33세) 씨와 백쾌웅(당시 45세) 씨 등 주민 80여 명이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끌려와 학살됐다는 장소를 찾아 끓어오르는 울분을 토했다.
순국 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5월 22일(양력 7월초로 추정) 모내기를 하던 중 영해 파출소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음력 7월 11일이 됐어야 울진 기성으로 끌려가 집단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당시 30세의 어머니(강윤길·87)가 친지들에게 부탁해 부패한 시체를 수습, 고향 마을 뒷산에 안장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사망하던 그해 초에 태어난 순국 씨는 어려서부터 가장이 국군들에게 살해당한 뒤 가진 것 없고 든든한 배경없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는 법을 배웠고 성장 후에는 먹고 사는 일이 바빠 누명 벗는 일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운락 씨와 연락이 닿은 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찾아 큰 수확을 얻었다. 용케도 당시 목격자를 만나 상황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던 것. 당시 15세였던 어티마을의 김모(72) 씨에 따르면 아버지 등 주민 80여 명을 실은 군트럭이 울진방향으로 가던 중 급커브 길에서 전복되자 아버지 일행을 산으로 끌고 갔고 마을 청년들을 동원해 구덩이를 판 후 총살을 시켰다는 것. 순국 씨는 "농사만 짓던 아버지가 좌익활동을 할 일도 없었겠지만 설령 했다고 하더라도 재판도 없이 이렇게 무참하게 처형할 수가 있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운락 씨는 "아버지가 끌려 가신 그 날을 제삿날로 여기고 있는 데 그 무렵엔 영해면소재지 방앗간에 제사떡을 하러 오는 이들로 발디딜 틈이 없어요. 모두들 침묵하고 있지만 가슴 속에 묻어 둔 사연은 같을 것"이라면서 "그나마 우리는 시체라도 수습해 왔으니 다행이지만 아직도 어디서 어떻게 비명횡사했는 지 모르는 이들도 많을 겁니다."라고 했다.
산을 내려오면서 순국·운락씨는 "의미있는 추석 명절입니다. 내년 이맘 땐 아버지와 당시 일행들의 억울한 죽임에 대한 진상을 반드시 밝혀 누명을 벗겨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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