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국화꽃과 '김정일花'

가을꽃의 여왕은 역시 菊花(국화)다. 국화는 고려 때 충선왕이 원나라로부터 가져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송나라 국화 재배 名門家(명문가) 유몽전의 菊譜(국보)에는 新羅菊(신라국)이 중국으로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어 국화의 원조가 韓流(한류)라는 설이 더 설득력 있다.

일본의 국화 역시 백제로부터 靑黃赤白黑(청황적백흑) 다섯 색깔의 국화들을 얻어 온 데서 비롯됐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지금은 보기 어려운 검은색의 국화가 있었다는 것은 흥미롭고 믿기지 않지만 중국의 五老洞碑(오로동비) 비문에 '墨菊(묵국)이 있어 그 빛이 먹과 같아 옛날에는 그 즙으로 글씨를 썼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검은 국화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국화 한류설을 뒷받침한다.

연휴 추석, 성묘객이 떠나간 산자락마다 무덤들이 온통 '꽃밭'이 됐다. 이번 추석 성묘길에 조상님들께 바쳐진 가을국화는 몇 송이나 됐을까. 1천만 가구로 쳐도 족히 수천만 송이는 될 성싶다.

그 국화꽃과 함께 월남한 이산가족들이 북녘땅에 두고 온 묘소도 과연 꽃밭이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아무래도 글쎄요다. 꽃조차도 이념과 사상의 도구로 이용하는 그들 세상에서는 가을이 오든 추석이 가든 국화꽃보다 더 위대하고 고귀하게 여기는 꽃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충성의 꽃이라는 '김일성花(화)'와 '김정일꽃' 그리고 '효성화'가 그런 이념의 꽃들이다. 속칭 김일성꽃은 1965년 그가 인도네시아 '보고르'식물원을 방문했을 때 스카루노 대통령이 선물한 것으로 65회 생일 때인 1977년 4월부터 전 인민들에게 '충성의 꽃', '김일성주의 혁명의 꽃' 등으로 이름 붙여 소개됐다. 꽃 색깔은 자주색으로 蘭(난)과에 속하는 이 꽃도 '김일성화의 노래' 등 찬양가요의 주제가 됐다.

'김정일花'는 1988년 2월 김 위원장의 46회 생일 때부터 '불멸의 꽃'으로 불리며 소개하기 시작한 꽃이다.

북한은 이 꽃이 일본의 원예학자 '가모 모도데루'가 남미가 원산지인 베고니아종 뿌리로 20년간 연구 끝에 개량해 김정일에게 바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10~15개의 짙은 붉은색 꽃이 넉 달 이상 지속적으로 필 만큼 번식력이 강한 장점이 있어 북한 전역에 보급되고 있고 평양 중앙식물원 등 각지에 설치된 40여 개소의 '김정일화 온실'에서 재배, 보급하고 있다. 김일성꽃과 마찬가지로 김정일 찬양詩(시)나 대중가요의 소재로 등장한다. 대표작이 박미성 작곡의 '김정일花'다.

김정일 위원장을 찬양하는 우상花는 또 있다. 일명 '효성화'. 김 위원장의 생일이 추운 겨울 막바지 2월 16일이다 보니 추운 겨울에도 길거리와 마을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종자를 개발한 것. 원산 농업대학 경제 식물학부에서 10여 년 연구 끝에 육종이 이뤄졌다. 꽃 색깔이 7가지 밝은 색깔을 띠고 향기도 있다. 씨 뿌리기, 재배조건 조절을 통해 꽃 피는 개화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항상 김정일의 2월 생일달에 맞춰 꽃을 피우게 한다.

꽃을 가꾸고 좋은 종자를 육종해내고 인민에게 보급하는 꽃사랑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이 '모택동꽃', '孔子花(공자화)'를 이름지었단 말을 듣지 못했고 로마가 '시저花'를 심었다거나 몽골이 '칭키즈칸꽃'을 보급했다는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들은 적이 없다. 꽃을 가지고 무슨 정치적 이벤트를 하든 자유지만 핵실험, 빈곤, 탈북, 인권과 위대한 동지의 꽃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가을, 그들이 거대한 온실 속에 김정일화를 꽃 피울 동안 이산가족 묘소에는 잡초만 우거지는 모순된 민족의 아픔을 성찰해 봐줄 수 있다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평화롭고 풍성한 가을이 찾아올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송이 꽃으로는 꽃다발을 만들 수 없다. 못난 꽃도 꽃다발 속에선 더 화려해지듯 세계 속에서의 민족 평화공존은 나 홀로 피우는 이념의 한 송이 꽃으로는 이뤄지지 않기에.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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