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다시 한글날에

오늘날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活版(활판)보다는 엄청나게 편리하고 손쉬운 컴퓨터 편집과 출판 환경의 변화로 출판물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신문·잡지·방송, 첨단화된 전자통신망들로 눈과 귀는 말의 홍수에 떠내려가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이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인터넷의 新造語(신조어), 국적 불명의 말 줄임, 외래어의 범람 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판국이다.

○…文盲(문맹) 퇴치는 물론 세계의 어느 문자보다도 컴퓨터와 궁합이 잘 맞아 디지털 문화를 이끄는 등 급속한 산업화의 원동력이 됐던 한글이 되레 그 덫에 걸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二律背反(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의 인터넷·휴대전화 문자 통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한글이 왜곡 되는 등 제 모습을 잃어가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한글 외면의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지 않은가.

○…한글의 빼어남은 세계가 안다. 유네스코는 1997년 訓民正音(훈민정음)을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 선정하고, '세종대왕상'을 해마다 시상한다. 한글의 과학적 구조와 쉽고 빠른 교육 효과에 감탄한 데다 순전히 창제된 문자라는 점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해의 '국어기본법' 공포에 이어 다시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했으나 여태 이 모양이니 기가 찬다.

○…우리나라가 발전의 속도를 크게 앞당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한글 덕분이다. 한글은 情報化(정보화)에 유리한 문자 체계일 뿐 아니라 배우기 쉬워 정보 대중화를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한글은 일본어나 중국어와는 비교도 안 되며, 영어의 알파벳 자판보다도 더 우수한 원리를 비탕으로 하고 있어 편리하게 정보화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한글의 장점은 이같이 나라 경제에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말과 글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며 그것이 무너지면 사회가 흔들리게 된다.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말과 글, 다양한 표현력을 갖춘 '풍부한 언어'는 질서 있고 갈등 없는 사회를 가꾸는 힘이 되고, 고급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도 必須的(필수적)이다. 오늘은 오백예순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우리가 소중한 한글에 대해 얼마나 무심했는지 自省(자성)하면서 사랑하고 가꾸는 새 길을 열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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