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시집간 딸이 아직도 눈에 밟힙니다."
20년 넘게 대구 서문시장 2지구에서 커피와 감주, 담배 등을 팔며 생계를 이어온 진순자(56·여·대구 서구 내당동) 씨. 서문시장 2지구 임시상가인 옛 롯데마트 지하 2층 통로에서 만난 진 씨는 눈물부터 글썽였다. 남들만큼 딸(30)에게 제대로 된 혼수를 못해 마음이 아프다는 것.
"지난해 말(12월 29일) 갑자기 불이 나는 바람에 몇 년 동안 애써 부었다가 탄 곗돈이 가방째 재가 돼 버렸어요. 게다가 화재현장엔 딸아이 시집보내려고 아껴 모은 돈까지 있었는데…. 1월말 올리기로 했던 결혼식도 뒤로 미뤄야만 했어요. 미안한 마음에 시집가기 전날 딸을 부여잡고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그나마 몸만 성하면 괜찮다고 달래는 딸 덕분에 여태껏 버틸 수 있었다. 딸은 자신이 알아서 결혼을 할 테니 걱정 말라며 오히려 진 씨를 위로했다.
시장에서 '감주 아지매'로 통하는 진 씨. 점포가 들어찬 통로 옆에 조그만 탁자 하나가 진 씨의 일터다. 탁자 위에는 '커피, 감주 팝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고 그 한쪽에는 낡은 전화기가 걸려 있다. 그 외엔 물을 데우는 가스레인지 정도가 장사 밑천의 전부. 노점상과 다를 바 없는 신세다. 불이 나기 전 생계를 꾸리던 점포도 2평 남짓한 공간일 뿐이었지만 요즘 사정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이것만 해도 어딥니까? 제 형편은 그래도 나은 편이에요. 나서서 이야기하길 꺼릴 뿐이지 형편이 더 딱한 이들도 많습니다. 어렵사리 점포에 세 들자마자 불이 나는 바람에 아무 것도 없이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도 있고요."
화마가 2지구를 덮친 지도 이미 10개월. 하지만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기억을 잊을 수는 없다. 때때로 악몽에 시달리는 것도 그 후유증. 아픈 상처를 달래며 조금씩 마음을 추슬러 간다. 숨이 붙어있는 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기에. 그는 이번 서문시장 축제를 통해 시장이 생기를 되찾기를 간절히 바랐다.
"2지구는 제 고향이나 마찬가지에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힘들어도 버틸 겁니다. 얼마 뒤엔 딸이 예쁜 손주도 낳겠죠. 할머니로서 그 아이에게 옷이라도 한 벌 해줄 수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젠 울지 않겠습니다. 2지구에 자리를 마련하고 시장이 활기를 띨 때까지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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