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은 지금 만추(晩秋)다. 산 위에서 불붙은 단풍이 기세좋게 산 아래로 타내려오고 있다. 그 중심은 백담사 위쪽의 내설악. 내설악의 단풍은 지금부터가 절정이다. 이번 주말이면 설악산 전체가 단풍으로 뒤덮일 시기. 기상청 기준으로 단풍의 절정은 80% 정도가 물들었을 때를 말한다. 때문에 설악 단풍은 남으로 세력을 넓히고는 22일까지 장관을 이룰 듯하다.
봄꽃의 북상속도는 하루 22㎞지만 단풍은 하루 25㎞의 속도로 남하한다고 한다. 시속 1㎞. 여유있게 주위도 살펴가며 단풍을 따라가보자. 속도전에 익숙한 우리네 삶. 빠른 삶에 지쳐 위로받고 싶다면 단풍 속에 묻혀 단풍의 남하속도로 걸어보자. 뒷짐지고 단풍 산행을 즐기며 마음까지 화사하게 물들이고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산으로 떠나자.
설악의 단풍은 화려하다. 진홍과 노랑인가 하면 어떤 단풍은 은은한 파스텔이다. 비단 단풍나무뿐이랴. 나머지 잎들도 지금 이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왜일까. 낙엽으로 저물기 전 스스로의 색깔로 제 몸을 태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모두를 시인으로 만든다.
백담사, 수렴동대피소를 지나 봉정암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모두 단풍 아래서 철학자고 시인이었다. 연인들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말없이 오색 하늘만 쳐다보고 걷는다. 유난히 붉은 단풍나무 잎을 가슴까지 끌어다놓고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한 중년의 여인. 색깔의 마술에 이미 나이마저 잊은 듯하다. 배낭하나 달랑 메고 무엇이 그리 급한지 뛰듯이 오르는 남자의 손에도 단풍잎이 들려있다.
봉정암을 오르는 등산로 중 단풍의 하이라이트는 쌍룡폭포 아래 철계단이 있는 곳. 계곡 양쪽을 색색의 단풍들이 장식하고 있다. 그 아래 계곡은 단풍잎 붉은 빛과 파란 가을 하늘을 담고 있다. 내설악의 가을 속살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가까이서 보는 단풍은 현란하지만 이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는 단풍 산은 파스텔 톤이다. 온통 단풍바다로 둘러싸인 느낌. 가을 산, 단풍 산이 이런 절경이구나 싶다.
웬만한 단풍엔 면역이 돼 감탄사도 쏟아내질 못할 즈음 봉정암에 닿는다. 봉정암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높은 해발 1,224m에 자리잡고 있다.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봉정암에서 석가사리탑으로 향하는 계단 길도 단풍터널을 이뤘다. 그 아래 단풍낙엽 길을 중년의 부부가 힘겹게 오른다. 무얼 기원하러 가는지 염원의 무게가 한보따리다. 그러면서도 단풍나무 잎도 만져보고, 서어나무 잎도 주우며 피곤한 기색은 없다. 단풍구경이 목적이든, 사리탑이 목적이든 이렇게 가을은 단풍산을 찾는 이들의 가슴마다 화사한 등을 켠다.
되돌아 내려오는 길, 어쩔 수 없이 바쁜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다가도 속도를 늦추는 건 피곤해서가 아니다. 단풍이 저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게다가 단풍은 산에서 하루에 40~50m씩 내려간다는데….
글·사진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교통
대구에서 설악산 백담사는 승용차로도 5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다. 버스로, 기차로 혹은 자가운전으로 백담사를 찾아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시외버스
대구동부정류장에서 속초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하루 6회(07:10, 08:05, 10:04, 11:55, 12:38, 13:45) 운행. 대구북부정류장에서 속초까지 하루 4회(08:00, 11:00, 14:30, 18:00) 운행→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백담행 버스를 타고 용대리 하차(1시간 소요)→용대리에서 백담 매표소까지 도보로 이동(20분 소요).
▶기차
동대구역 오전 5시 40분 출발, 영주역 경유 강릉역 12시 15분 도착→강릉역에서 28번, 19-7번, 21번 등 버스 이용 강릉 시외버스터미널도착(25분 소요)→속초 시외버스터미널 도착(1시간 10분 소요)→백담행 버스 이용 용대리 하차(1시간 소요)→백담 매표소까지 도보 이동(20분 소요)
▶자가용
대구→중앙고속국도→원주JC→인제→원통→민예단지 삼거리에서 미시령 방향으로 진입(30분)→백담사 갈림길에서 우회전→백담 주차장 주차(주차료 소형 당일 4천 원)→백담 매표소까지 도보 이동(10분 소요).
▶마을버스
일단 국립공원매표소인 백담매표소까지 왔다 해도 갈 길이 멀다. 백담 매표소(어른 3천200원, 7~12세 어린이 600원)에서 100m를 가면 마을버스 매표소가 있고 이곳에서 백담사까지 6㎞는 마을버스가 운행한다. 버스로는 15분 거리이지만 도보로는 1시간 20분이 걸린다. 편도 2천 원으로 비싸지만 이 구간은 버스를 타는 게 좋다. 산보 삼아 걷는다 해도 짜증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길이 좁아 수시로 다니는 버스와 다른 차량을 피하는 게 여간 성가시지 않다.
백담 매표소에서 백담사행은 첫차 07:00 막차 17:30(배차간격 20분), 백담사에서 백담 매표소행은 첫차 07:30 막차 19:00(배차간격 20분).
▩대피소
설악산의 경우 중청대피소만 예약이 가능하다. 나머지 대피소들은 예약이 되지 않고 선착순으로 숙박이 결정된다. 주말이나 여름 성수기 못지않게 가을 성수기에도 이른 시간에 대피소에 도착해 숙박가능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수렴동대피소도 입실 순으로 숙박이 가능하다. 수용인원 70명에 이용요금은 5천 원. 백담사를 넘어서면 휴대전화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유의할 것.
▩연락처(지역번호 033)
속초시외버스터미널 633-2328.
시외버스 용대영업소 462-5817.
설악산국립공원 백담분소 462-2554.
마을버스 운영회사인 용대향토기업 462-3009.
외설악한국산악구조대 636-8115.
수렴동대피소 462-2576.
소청대피소 011-37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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