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 시평] 북 핵실험 경계해야 될 것들

북한이 핵실험을 전격적으로 실시하면서 한반도가 '북핵 쇼크'에 빠졌다. 증권과 코스닥시장이 급락하고, 환율과 금값이 오르고, 국제유가도 상승하고 있어 경제적 손실은 막대할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우리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 것은 사태의 진전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사태의 원인 및 성격, 그리고 대책에 대해 극단적인 의견대립 양상이 보이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월 7일 헬싱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인지, 언제 할 것인지에 관해 아무런 징후나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정부가 이달 5일 특수정찰기 WC135C를 한반도 상공으로 급파할 때까지도 한국의 정부당국자들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아무런 징후가 없다고 논평했다. 심지어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9일 오전 10시 35분에도 국회정보위원회에서 "아직 북한의 핵실험 징후는 없다"고 보고했다. 이와 같이 늦은 사태 인식은 현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사태에 대해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그 책임을 돌리는 견해가 정부여당과 '북한전문가들' 사이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이번 사태를 북한과 미국 간의 대립으로 보고 양자 간의 수교로 북한체제를 안정시킨 뒤에 양자 주도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6·25전쟁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침략·도발한 전쟁이니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된다'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주한미군 철수 주장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는 인질극의 패닉상태에서 인질들이 구출자들보다 인질범들에게 정서적 공감을 더 갖는 '스톡홀름신드롬'의 전형이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에 유엔헌장 제7장 42조의 군사적 제재를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여타 수단에 의한 제재는 안보리 15개 회원국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어 결의 채택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이 매우 낮고, 군사제재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 한국의 경제에 심각한 그림자를 드리울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이 볼모로 잡혀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결과정에서 필요한 양보를 한국이 대부분 떠맡아야 될 가능성이 90년대 초 제1차 북핵위기 때보다 더 높다는 것을 직시해야 된다. 이런 가운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교훈이 지켜지기를 고대한다.

첫째, 지난 반세기 이상 북한이 대미, 대남 협상에서 보인 행태는 힘을 숭배한다는 것이다. 힘의 숭배는 협상의 모든 수준에서 적용되며, 매 협상에서 '힘의 작용점'을 파악하고, 이를 이용함으로써 협상이익을 극대화해왔다. 힘을 숭배하는 태도는 역으로 약자에 대한 경멸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정부가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와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여줄 때 대북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둘째, 제1차 북핵위기 협상에서 북한은 비정통적인 협상기법을 사용해서 상대방이 제공하는 양보는 일단 전부 챙기고 나서, 더 많은 것을 강요하는 협상태도를 취했다. 즉, 상대측이 선의로 조건이나 설명 없이 행한 양보에 대해 답례(quid pro quo)는 고사하고 이를 협상력의 약화로 간주하여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이는 우리가 북한에 양보를 할 때 무엇에 대한 대가로 얼마만큼 양보하는 지를 분명히 해야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이번 사태 해결에 급급해서 북한의 지극히 당연하고 미미한 양보를 확대 인식하여 무한한 행복감에 빠진 나머지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양보를 하는 다행증(多幸症, euphoria)이다. 이번 사태는 1992년에 남북한이 준수하기로 약속한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을 북한의 김정일 정부가 위반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협상으로 교정해야 될 대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지해야 된다.

북한은 협상을 "정치적 수단을 사용하여 상대방이 수용할 수 없는 목표를 달성하는 전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진정 평화적 사태해결을 원한다면 한국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하되 힘에 기초한 단호한 입장견지를 해야 된다.

허만호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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