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뇌종양 투병' 정대출 씨 가족의 삶

'해가 그 얼굴을 가린지도 한참인데/작은 짐자동차로 행상하는 이/확성기 외침이 들린다/(중략)/언제나 똑같은 크기의 똑같은 내용인데/가족을 위해/저토록 절절한 열심으로/사는 짐자동차 행상이/내 마음을 사로잡는다(임종호 시인의 '짐자동차 행상'이라는 시 중에서).'

하루도 몸과 마음이 편할 날 없던 삶. 정대출(47) 씨는 그릇 행상을 하며 전국을 떠돌았다. 수입이 많지 않았던 탓에 아내도 곁을 떠난 지 오래. 코흘리개 아들은 임대아파트에 살던 여동생 정경자(46·경북 구미시) 씨의 집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행상으로 생계를 꾸리던 그의 발걸음은 병원에서 멈췄다. 뇌종양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오른 것. 5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쉽게 피곤해지고 머리가 아파왔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병원에 가길 주저했던 것이 화근. 병세는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의료진은 수술로 뇌 속 종양을 모두 제거하지 못했고 나머지는 방사선치료를 통해 없애기로 했다. 그러나 가진 돈이 없어 제 때 치료를 받으러 다니지도 못했다. 결국 조마조마하던 일이 터졌다. 지난해 6월 화장실에서 쓰러졌고 왼쪽 몸이 마비된 것.

그제야 병원을 찾게 됐지만 병원비는 늘 고민거리였다. 정 씨 아들(25)을 맡아 기른 여동생 경자 씨의 부담이 더 커진 셈. "어떻게 피붙이인 오빠를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 저 역시 술과 도박에 빠져 허우적대던 남편과 헤어진 뒤 아들(17) 하나를 혼자 기르는 형편이었지만요. 한 번 쓰러진 오빠는 몸을 가누기 힘들어 혼자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죠."

경자 씨는 대구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 부근 전자제품 부품 생산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점심시간이 되면 홀로 집에 남아있는 오빠의 식사시중을 들어줘야 했기 때문. 한달 100만 원 남짓한 수입으로는 정 씨의 약값까지 대며 네 가족이 살기에 힘겨웠다. 오누이 모두 이혼이라는 아픔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기에는 삶이 너무 팍팍했다.

고모인 경자 씨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란 정 씨 아들은 가정형편상 고교를 채 마치지 못했다. 그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도 밤에는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탰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고모 호강시켜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는 올해 초 서울에서 직장을 구했다. 반가운 소식에 경자 씨도 덩달아 힘이 났다.

하지만 꼬여진 실타래가 쉽게 풀리지는 않는 법. 조카는 입사한지 갓 한달이 지날 무렵 일자리를 잃었다. 회사가 부도로 쓰러진 탓. 이후 조카는 막노동판을 전전해야 했다. 게다가 경자 씨마저 탈이 났다. 집 창문에 커튼을 달려고 의자 위에 올라섰다 떨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친 것. 직장은 쉬어야 했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한달을 버텼다. 오빠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머물고 있는 병원에서 나온 치료비만 170만 원. 얼마나 더 들지 알 수 없지만 경자 씨는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정 씨도, 역시 결혼생활에 실패한 뒤 당뇨로 투병중인 큰 오빠도 아니다. 큰 오빠와 살고 있는 어머니(89·서구 비산동) 때문. 어머니는 병원 환자대기실에서 새우잠을 자며 정 씨 곁을 지킨다. 경자 씨가 집에 가서 쉬시라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혼자선 집에 돌아갈 수 없다며.

"비좁은 단칸 월세방이지만 이곳에서 주무시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하지만 통 말을 듣지 않으십니다. 오빠와 함께 가길 고집하세요. 오빠도 문제지만 이러다 어머니까지 잃게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오빠가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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