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뒤통수 맞은 기분"…옥수수박사의 '한탄'

北 식량난 해소 김순권 교수 "감정의 골 더 무서워"

"정말 요즘 말로 '대략 난감'합니다."

10일 경북대 농과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김순권(61) 교수. 지난 1998년부터 굶주린 북녘 동포를 위해 쉬는 날도 잊고 연구에 몰두해온 그는 당황스럽다고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휴일까지 반납하고 북한의 식량난을 해소하려고 슈퍼 옥수수 연구에 힘을 쏟았건만, 북한으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에요. 북한 주민들에게 핵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배를 채우는 것이 가장 급한 문제인데…. 다가올 겨울이 참으로 걱정됩니다."

울산농고와 경북대 농대를 졸업한 뒤 1969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연구사보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40여 년을 옥수수와 함께 한 김 교수.

식량난 해소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보낸 17년을 뒤로 한 채 그가 경북대 교수로 돌아온 것은 배고픔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1995년 언론보도를 통해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의 이야기를 접한 뒤 단순한 동포애 이상의 고통과 책임감을 느꼈다는 그다. 지난달 27일에도 평양에서 두 시간 거리인 온산을 방문, '북한형 슈퍼옥수수'밭을 둘러보고 왔다.

김 교수가 북한의 핵실험 소식을 접한 것은 국제옥수수재단에 들르기 위해 서울역에 도착했을 무렵. 뉴스를 지켜보며 '북한을 위해 벌이고 있는 현재의 연구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마저 들었다.

"국제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신뢰인데 북한은 핵실험으로 그 신뢰를 저버렸어요. 저는 이 연구도 민족과 통일을 위하는 일이라고 믿었는데 북한은 우리와 하나 되려는 의지가 있나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현재까지 '북한형 슈퍼옥수수' 연구는 성공적이다. 슈퍼옥수수 3만5천27종 가운데 품질이 뛰어난 10종을 북한에서 재배해본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이 연구가 북한 주민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김 교수. 그가 지난 8년 동안 북한을 방문한 것은 31차례, 머문 날로 따져도 255일에 이른다.

때문에 누구보다도 북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통해 민족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국민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핵도 문제지만 남북간 깊은 감정의 골이야말로 북한 핵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탓인지 우리보다 오히려 중국과 가깝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민족 통일을 위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냉철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한편 김 박사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아시아 10개국에서도 슈퍼 옥수수 개발에 매진중이다. 그는 연말과 내년 3월 북한 방문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에 대해선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북한 핵실험 실시 이후 생긴 변화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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