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꿈 나의 삶, 김연철] (15)대구여고는 공부하는 학교다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 봄에 대구여고 교장으로 발령이 났다. 명문 학교이던 대구여고가 평준화 이후 하위권 학교로 전락해 있었다. 부임하기 전 어느 장학사가 대구여고 교우지에 난 학생 앙케트를 보여준다. 거기에 '우리 대구여고는 ○○대학 보충대, 점심시간이면 범어시장이 우리의 무대'라 적혀 있다. 이는 학생들의 성적과 면학 분위기를 한 마디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대구여고에 배정된 것을 수치로 생각하며 일류대학은 고사하고 2·3류 대학에도 입학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들 또한 진학지도에 자신을 잃고 무사안일의 타성에 젖어 있었다.

입학식 날, 학부모님들은 배정에 불만을 품고 아예 참석도 안했다. 참석한 20, 30명의 학부모조차 학부모 석에 앉지도 않고, 운동장 끝 담 밑에 서 있다. 희망과 축제 분위기가 넘쳐야 할 입학식이 이 모양이니 교장인 나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오후 긴급 직원회를 소집하고 2일 후 학부모 총회를 개최하겠으니 1·2·3학년 모두 담임선생님이 책임지고 전원 참석하도록 하게 했다. 그리고 불참하는 학부모는 그 사유서를 구체적으로 작성 제출하도록 했다.

당일 학부모님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나는 평소 내 소신을 힘주어 말했다. "학부모님!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딸을 여러분이 원하는 대학에 전원 합격시키겠습니다. 저의 과거 진학 지도 실적을 한 번 확인해보십시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니 와! 와! 하면서 힘찬 박수가 그칠 줄을 몰랐다. "지금 3학년은 1년 밖에 남지 않았으나 이들도 꼭 좋은 대학에 합격시키겠습니다." 하니 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학부모님들이 무척 좋아하며 "교장의 소신을 보니 틀림없다. 우리도 적극 돕자."고 하면서 별도 계획을 세우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을 먹고 교장실에 앉아 있으니 와글와글하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교감에게 물으니 "교장선생님, 자율학습 시간인데 원래 그렇습니다." 라고 한다. 기가 막히는 소리다. 나는 바로 방송을 통해서 "자율학습 시간에 떠들면 앞으로 교실에서 쫓아낸다. 교장이 직접 쫓아낸다. 지금부터...."라고 강경하게 말한 후 36학급을 둘러보았다. 시장바닥 같았다. 여기가 공부하는 학교인가.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그날부터 떠드는 학생은 그 자리에서 이름을 수첩에 적어 넣었다. 학교장이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무상출입할 수 있도록 모든 교실의 뒷문을 열어놓도록 했다. 하루 적어도 2회 이상 전 교실을 순회 지도했지만 잘 안 된다. 힘들고 어려웠었다. 결국 3학년은 4월 말경, 1·2학년은 2학기가 되어서 겨우 질서가 잡혔다. 한번 질서가 잡히니 가속이 붙는다. 자율학습시간이면 어느 교실 할 것 없이 숨 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89학년도 신입생이 들어왔다. 각 중학교에서 뿔뿔이 들어온 학생들을 어떻게 면학 분위기에 익숙케 하느냐? 우선 겁부터 났다. 동관 1층 1학년 4반 교실에 들어가니 너무 조용했다. 그 다음 옆 반인 1학년 3반에 갔다. 여전히 조용했다. 학생에게 어떻게 이렇게 조용하냐고 물으니 "우리는 입학하기 전에 대구여고는 공부하는 학교이며, 자율학습 시간에 떠들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왔습니다."고 하지 않는가. 너무 이외의 대답에 반갑고 고마워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일 년 동안 그렇게 힘들였던 노력의 결실이 아닌가. 복도에서 바깥을 보면서 혼자 실컷 울었다. 이제 대구여고가 공부하는 학교로 완전히 정착하게 된 것이다.

김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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