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실패는 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일자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100대 여성기업(2001년)'에 이어 지난해 미국 ABC TV '올해의 아시아 지도자 11인'에 선정됐던 재미교포 진수테리(49·여·사진) 씨가 11일 산학연구원, 대구은행, 한국능률협회의 초청을 받고 대구를 방문, "실패를 두려워 말 것"을 젊은이들에게 당부했다.
"1978년 부산대 섬유기계공학과(당시 우리나라 섬유산업은 최대 호황기였다)를 졸업했지만 취직에 실패해 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취직에 실패했습니다."
진수테리 씨가 한국에서 첫 직장을 얻은 것은 정확히 150번 째 이력서를 넣은 뒤였다. 그것도 자그마한 방직공장이었고, 그 직장생활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서른 살 때 우연히 만난 뉴질랜드 또래 친구 미스 앤(당시 앤은 세계일주 여행 중이었다)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됐고, 앤의 소개로 남편 샘 테리를 만나 198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여느 이민자처럼 접시닦이와 서빙으로 시작된 그녀의 미국생활은 1987년 가죽벨트 공급업체에 취직해 안정을 찾는 듯 했다. 그러나 열성적인 노력으로 성과를 인정받았지만 승진에서 계속 밀려났고, 입사 7년차 때는 샌프란시스코주립대 MBA과정을 밟는 노력에도 불구, 충격적인 권고사직 명령을 받았다.
"해고 사유가 미국인과의 대화에 서툴고 미국인의 사고를 이해하는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라이노 스피치 클럽을 처음 시작했을 때 '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웃기는 여자'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영어를 못한다고 입을 닫고 살던 과거를 버리고, 웃음 띤 얼굴과 풍부한 표정에 손짓발짓을 다 동원한 대화에 미국인들이 신이 나서 "너 영어 정말 잘 하는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 어느새 전문 연설가가 된 진수테리 씨는 한국인 특유의 엑센트를 빌미(?) 삼아 미국인보다 40% 더 비싼 강연료를 요구했다."
"동양문화에다 서양문화까지 잘 아는 연설가인 만큼 출연료를 더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생각을 바꿔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낸 진수테리 씨는 1993년 의류업체 ㈜컷루스로 옮겨 부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자신을 '전문연설가(어드밴스드 글로벌 컨넥션 대표)'로 소개한다. 지난 2001년 샌프란시스코시는 7월 10일을 '진수테리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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