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식스 센스'로 영화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그가 만든 파문의 핵심은 이성과 오성으로 이루어진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이면들에 대한 노출, 바로 그것에 있다. 오감의 체계로 굳어진 이 세계를 움직이는 여섯 번 째 감각이라는 제목의 의미도 이 점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싸인', '빌리지'와 같은 이후 작품에서 보여준 바도 유사하다. 샤말란은 울타리 쳐진 이 곳 너머의 다른 것, 우리가 세계와 우주라고 믿고 있는 일상 너머의 이면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고 지금껏 고집스럽게 그 공간을 창출해가고 있다. 2006년도 신작 '레이디 인 더 워터' 역시 동일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여러 가구가 같은 모양의 집에서 사는 아파트 정원, 그 정원 수영장 밑에 비밀과 전설을 지닌 다른 왕국이 있다는 설정, 그것은 너무나도 샤말란 다운 착상이었음에 분명하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아내와 아이를 잃고 세상에 대한 의욕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한 남자 클리브랜드는 동네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며 소일한다. 훌륭한 의사였지만 이제는 말더듬이 관리인이 되어버린 그에게 놀라울 일도 기대할 만한 일도 없다. 그런데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관리 중인 아파트 수영장 안에서 한 소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스토리'라는 이름을 지닌 소녀는 자신이 동화 속 요정인 '나프'라고 소개하며 곧 자신들의 세계인 '블루 월드'에 돌아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 이후다. 클리브랜드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나프' 요정과 관련된 전설의 실제 주인공임이 밝혀진다. 이 전개 과정에서 그 누구도 황망한 설정과 제안에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감독은 자신이 진심으로 믿는 한 가설과 전설이 사실이 될 수 있음을 영화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스토리'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샤말란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의 힘을 강변하고자 한다. 환상을 사실로 만들 수 있는 힘, 이면의 세계와 현실의 공간을 섞을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은 바로 '스토리' 이야기 요정의 존재를 믿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늠된다. 당신이 '스토리'를 믿는다면 그 이야기는 현실이 된다는 설정, 그것은 바로 감독의 제안이자 선언인 셈이다.
영화와 이야기에 대한 감독의 고백적 영화라는 사실은 영화의 상투성에 대해 비난하던 영화평론가가 유일한 피해자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왜 비오는 날 꼭 사랑을 고백하지?", "첫 장면만 봐도 끝을 알 수 있어."라고 거만하게 굴던 영화 평론가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지식만을 준 채 괴물에게 습격당하고 만다. 즉, 그의 당당한 예측이나 분석은 오만한 오해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재미는 영화 속에서 작가로 직접 출연한 샤말란 감독의 면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종종 카메오로 등장하던 감독이 배역을 맡은 이 작가는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실마리로 격상된다. 요정 스토리는 그가 곧 세계를 전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게 되리라 예언한다. 자신의 영화 세계에 대한 자기 주술적 효과인 셈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스토리 요정과 블루 월드에 대한 전설이 '한국 전설'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이 듣기에 불편하기 그지없는 한국어를 모사하는 모녀는 전설의 전모를 드러내는 신비로운 동양인 역할을 해낸다. 문 앞에서 발도 못들이게 하는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한국인의 모습은 과연 이방의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잘 보여준다.
샤말란 감독의 제안은 늘 흥미롭다. 그리고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 속 평론가처럼 감히 말하자면 샤말란 감독의 영화는 지독한 자기 증식과 반복의 문법에 빠졌음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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