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를 마실 때 나는 씁쓸한 맛을 함께 마신다. 차에 들어있는 타닌(tannin) 또는 카데킨(Catechin) 성분의 떫은 맛 때문만은 아니다. 왠지 모를 이질감, 내 것이 아닌, 그래서 낯설며 불편한…. 그에 더해 내 것 아닌 남의 것에 집착한다는 유쾌하지 못한 느낌. 차가 우리나라에 전해진지 1천 년이 넘었다는데 이런 이질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우리나라에 차가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였다. 그리고 신라 후기에는 차 문화가 상당히 발달했다. 차 인구도 많았고 차와 관련된 이야기도 많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억불(抑佛) 정책이 펼쳐지기 전까지 우리민족은 차를 즐겨 마셨다. 대략 계산해도 차의 번성기는 500년 정도 된다. 그런데도 '우리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 것'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것'이 아닌 듯한 이 느낌이 들어 씁쓸하다는 말이다.
나는 오랜 세월 우리네 땅에서 사랑을 받았던 차가 어째서 갑자기 우리 곁에서 사라졌던가 납득하기 힘들다. 차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납득할만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차가 왜 사라졌냐고?" "말 같은 말을 해라."는 사람도 있었고, "차는 사라진 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우리 다도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다 일본 놈들 때문"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조선후기에 우리 차를 정립했던 초의선사를 기억한다. 조선의 차 문화를 부흥시킨 다산 정약용에 대해서도 들은 바 있다. 초의선사의 삶을 짚으며 오랜 세월 그를 좇았던 소설가 한승원('초의'의 작가)의 노력도 안다.
지인 중에 차를 아끼는 사람이 있다. 애호가 수준을 넘어 '우리 차의 뿌리'를 찾아보고, 빈자리를 메우고, 흉물처럼 붙은 혹을 떼어 내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그가 전해준 히사다 씨의 말이 차의 씁쓸한 맛을 더한다. 히사다 씨는 일본 다도의 양대 산맥이자 일본 문화계의 대부로도 불리는 '오모테센케 종정'이다.
"일본 다도는 조선에서 건너온 것인데 한국 사람들이 앞다퉈 일본 다도를 배우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에게서 배우는 게 나쁜가? 남아있는 기록이나 자료가 부족하다면 일본에서 배워와도 좋다. 좋은 것이라면 어디서 배운들 상관일까.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이 함께 가졌던 것을, 어쩌면 우리가 더 많이 가졌던 것을 일본은 계승'발전시켰는데 우리는 잃었다는 게 씁쓸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차 문화는 학자나 승가에서 명맥만 유지돼 왔다고 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전국시대 사무라이들의 고급문화로 받들고 발전시켰다. 임진왜란의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금박 입힌 다실(茶室)은 당시 일본 상류층이 차 문화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졌는지 보여준다. 듣기 좋은 말로 우리는 일찍이 맛보고 버렸고, 일본은 뒤늦게 맛을 들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변명이 차 맛의 씁쓸함을 덜어주지는 않는다.
'차 문화도 하나 계승시키지 못했냐' 며 조상님들 원망할 것도 없다. 우리네 손에서 빠져나간 것은 차 문화뿐만이 아니다. 당장 거리에 나가서 한복 입을 사람을 얼마나 구경할 수 있을까? 대단할 것이 없는 불꽃놀이 축제에도 기모노 입고 게다 신은 시민 수백 명이 요도가와(일본 오사카의 강)변으로 모이는 일본이다. 차의 떫은맛과 더불어 개운한 맛까지 느끼고 싶다. (2006년 10월 12일자 라이프매일)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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