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들어가 보면 피고인들이 묵묵히 자리에 앉은 채 검사나 변호사, 아니면 재판장의 묻는 말에만 극히 간단하게 '예' 또는 '아니오'라고 답변하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조금 대답을 길게 하거나 질문하는 내용에 보충 설명이라도 할라치면 호통이 날아오기 일쑤다.
이미 검찰에서 신문을 받으면서 주눅이 들었던 데다가 법정에서도 검사실에서처럼 계속되는 검사의 추상 같은 추궁 속에서 자기 주장이나 결백을 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법관도 검찰의 수사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터라 피고인에 대한 유죄 심증을 굳히고 있어서 피고인의 해명이 먹혀들기가 쉽지 않다.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한 변호사 역시 변론서 준비에만 매달렸던 까닭에 검찰의 근엄한 추궁을 차단하기가 쉽지 않고 (검사를 제지하기 위해) 재판장의 동의를 구하는 것도 힘들다.
미국 영화 속에서 흔히 검찰과 변호인·피고인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법정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인 것이 현재 우리의 형사 법정 풍속도이다.
물론 각 지방법원별로 시범 재판부를 정해 공판중심주의를 시행 중인 상태이지만 아직 피고인이 적극적인 방어권을 행사하기는 역부족인 상태다. 지난해까지 사법개혁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위한 법률 개정안도 국회 입법화 과정에서 낮잠을 자던 중이었다.
그러던 공판중심주의가 최근 법조3륜을 중심으로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달 4개 고법을 순시하면서 던진 '법원을 중심으로 한 공판중심주의 강화' 발언에 맞서 검찰도 증거분리제출제도 도입으로 공판중심주의에 적극 대응하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범죄 피의자를 기소할 때 지금까지와 달리 공소장만 내고 관련 수사 기록이나 증거서류는 일체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변호사협회는 그들대로 전면적으로 불어닥칠 공판중심주의 바람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전략 마련에 부심하는 중이다.
공판중심주의의 핵심은 한마디로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기존 '조서 재판'을 벗어나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 측의 공방과 증거를 통해 재판장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재판방식을 말한다.
그동안 형사재판은 물론 민사재판도 서류에 의한 재판 성격이 짙었다. 형사재판은 검찰이 제출한 수사기록을 판사가 사무실에서 검토하며 사건에 대한 심증을 형성하고 그 판단에 따라 재판에 임해왔다. 민사재판도 변호인들이 제출한 엄청난 자료 검토 때문에 정작 법정에서 당사자 등 이해관계인들은 권리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재판 결과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는 사법부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제 대법원이 적극 나서서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겠다고 하니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 확보와 인권 강화, 실체적 진실 발견은 한층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공판중심주의는 자칫 피고인이나 재판당사자의 소송 비용 부담을 크게 증가시킬 개연성이 높다. 또 재판부가 갈수록 교묘해지는 위증을 어떻게 가려내느냐 하는 것도 관건으로 작용한다. 위증 사범이 갈수록 늘고 있으며 이 중에서 대구의 증가율이 더욱 두드러져 지난 한 해 대구지검에 적발된 위증사범도 158명으로 전국의 17%를 차지했다. 말을 잘해 벌을 피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할 법원의 절대적 과제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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