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코끼리 만지는 사람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고 치자. '기둥이 아니지 아니한 것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으므로 기둥이라 말하기가 어렵지 아니하지 않으나 기둥이 아니라고 생각 않을 수 없지도 아니하므로…'.

이쯤 되면 듣는 사람은 도대체 코끼리가 기둥처럼 생겼다는 건지 아니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고 들으면 들을수록 더 아리송해진다. 더구나 장님 한 명만 코끼리를 만지며 이리저리 말을 비비 꼬아 돌리고 이 말 저 말 바꿔가며 오락가락하고 있다면 앞뒤 가려 들어가며 대충 감이나마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리 만진 사람 한 마디, 코 잡은 장님 딴소리에 꼬리 잡은 장님은 이 말, 귀 잡은 장님 저 말 衆口難防(중구난방)이면 듣는 쪽은 코 길고 귀 큰 코끼리의 실체는 오간 데 없이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지 1주일이 지난 이 시간까지 대통령을 위시해 국방, 정보, 외교를 책임진 정부부처 우두머리들이 쏟아낸 말들을 듣다보면 바로 그들이야말로 코끼리 만지는 사람들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국회에서 북한이 언제 핵실험을 할 것 같으냐고 질의한 그 시간에 이미 핵실험을 했는데도 '김정일 위원장 마음속에 들어가 본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느냐'고 뒷북친 정보원장의 눈 뜬 장님 같은 답변이야 아마추어 정부 등장 후 흔하게 보아온 코미디로 접어두자.

핵실험이 터진 직후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고 한 대통령도 하루 만에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는 지적은 인과관계를 따져 봤으면 좋겠다'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아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으므로'식 어법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식의 퍼주기 정책은 계속 하겠다는 건지, '과거처럼 북한이 뭘 하든 모든 것을 인내하고 양보하고 수용하는 것은 해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 그대로 이번에는 결단을 내리겠다는 건지 종잡기 어려운 오락가락 어법이다. 3년 반 동안 지겹게 들어온 그 어법은 조금도 바뀐 게 없다. 이러니 북핵해법에 신뢰감이 생겨날 수가 없다.

정부 내의 한 식구끼리도 이 말 다르고 저 말 다르다. 국무총리가 '포용정책이 북 핵실험을 막는 데 실패했다고 자인한다.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하면 통일부장관은 '포용정책이 폐기되거나 전면 수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정책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한다. 전직 대통령들도 한 명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8년 7개월간 4조 5천억 원을 북한에 퍼주었고 그 돈으로 핵을 만들었다'고 비판하면 또 다른 대통령은 '미국이 못살게 굴어서 살기 위해 핵 개발을 한다고 그러는데 왜 죄 없는 햇볕정책을 탓하냐'며 대결이다. 5조 원 가까이 퍼주며 인심 쓰고 순안 비행장에서 포옹하며 우의를 다졌다면서 핵실험을 언제 할지 귀띔도 못 받는 처지에 무슨 염치로 자신의 햇볕정책을 자찬하는가. DJ는 북한 갔을 때부터 꿍심을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지금 북한의 핵실험 이후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앞뒤 안 맞는 自畵自讚(자화자찬)이나 국민이 느끼는 안보 불안, 경제 불안, 노 정권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신뢰성 없는 북한 진단 능력 같은 게 아니다. 정작 무서운 것은 북한의 핵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진단과 분열이 춤추는 내부의 붕괴다.

태산 같은 모습으로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지도자는 애매모호한 말재간으로 국민을 혼돈스럽게 만들어 뭐가 뭔지 모를 지경에 빠뜨리고, 측근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상대의 실체도 제대로 모르면서 정치적 입장과 사상경력에 맞춰 중구난방 서로 다른 진단을 하고 모순된 처방전을 써 내는 것.

그리고 국가안보의 危難(위난)을 코앞에 두고도 국회의원들끼리도 한목소리를 내는 데 사흘이나 걸리고 그나마도 의견 통합을 못 해내고 금강산 문제 등은 반 토막 결의안을 내놓고 끝낸 갈등과 분열. 그런 것들이 바로 북핵보다 더 무서운 우리 내부의 핵분열이다. 머리 위의 핵보다 붉은 가슴 속에 숨긴 핵이 더 무섭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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