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배달 왔습니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왔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쉽사리 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면 공공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자동차 문고'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출기한이 10일로 비교적 여유 있을 뿐 아니라 도서관까지 발품을 팔지 않아도 좋다. 잠깐씩 아파트에 다녀가는 자동차 문고는 바쁜 직장인·주부·학생들에게 '책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동차 문고가 도착했다는 방송을 듣자마자 아이 손을 잡고 뛰어 나오는 주부에서부터 점잖게 걸음하시는 노인분들까지 모두 반갑게 맞아주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7개월째 대구 남부도서관의 자동차 문고 팀장을 맡고 있는 정현호(41·여) 씨. 정 팀장은 벌써 단골이 생길 정도로 이동 도서관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의 다른 공공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남부 도서관도 1대의 미니 버스를 이동 도서관으로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정 팀장이 맡는 곳은 남구 전역과 수성구 지산·범물·파동 일부 지역과 달성군 가창. 한 아파트 단지당 10일씩 총 31곳의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고 있으며 공공기관과 복지시설, 군 부대 등 17개 기관으로 정기적인 책 배달을 하고 있다. 한 곳에 머무르는 시간은 30분 남짓이지만 10일 단위로 방문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자동차 페달을 밟아야 한다.
"젊은 주부들은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동화책이나 실용서적을 많이 찾는 반면 장년층은 수필류나 문학서적을 많이 찾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 경우는 예약 주문이 밀릴 정도죠."
자동차 문고는 평균 2천 700여 권의 책을 싣고 달린다. 좌석을 모두 들어내고 책장을 천장까지 짜 올린 차 내부는 책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루 대출권수는 400~500권. 방학 때는 700~800권이 제 주인을 찾아간다.
정 팀장은 "가창에 사시는 한 70대 어르신은 자동차 문고를 이용해 올해 다독왕을 차지할 정도로 책을 즐겨 읽는 분이라 기억에 남는다."며 "온 가족이 대출증을 발급받아 한 번에 10권 넘게 책을 빌려 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빨리 배달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 하니 3명의 자동차 문고 팀원끼리 손발을 맞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 팀장이 주로 대출·반납 업무를 맡고, 최혜경(사무원) 씨는 주로 책을 골라주는 일, 운전을 하는 서용수 씨도 핸들을 놓고 책꽂이 정리에 손을 보탠다. 문고차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옆과 뒤쪽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는다.
남들이 모르는 고달픔도 더러 있다. "손님들을 위해서 시동을 꺼야 하다 보니 정차하는 동안에는 냉·난방기를 전혀 작동할 수 없어요. 덕분에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겨울에는 따뜻한 양지를 찾아야 하지요."
정 팀장은 앞으로는 주택가에도 도서 배달 업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줬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말했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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