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직원들에게 '뭐 한가지는 했다.'는 자부심만은 꼭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전국 수백 개 업체, 특히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몇몇 서울 대형업체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공중파 방송국에 애니메이션을 납품한 대구지역 캐릭터 애니메이션 업체가 있다. 바로 캐릭터 및 애니메이션, CI(기업이미지통합), BI(브랜드통합), 홍보광고 전문업체인 ㈜마루커뮤니케이션즈(대표 권은태). 애니메이션 도전 초기 서울에 갔다 명함 하나 건네지 못한채 대구로 돌아오기 일쑤였고 '대구에서 무슨 애니메이션'하는 자존심 상하는 얘기까지 들어야 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능력을 인정받아 방송용 애니메이션 후속편을 주문받을 정도가 됐다.
◆신데렐라 '아이 삼국유사'
마루커뮤니케이션즈는 지난 4월 야심작 '아이 삼국유사(50편)'를 SBS방송국에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비수도권 업체 중 이른바 방송3사에 애니메이션을 납품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게다가 반응까지 폭발적이어서 지난 8월 방송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앙코르방송까지 들어갔을 정도다.
이뿐 아니라 이를 토대로 현재 지역 출판업체와 '아이 삼국유사(전 5권)' 시리즈를 준비, 이번 주 중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과 이마트 등 대형소매점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또 '아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완구 및 문구 캐릭터 상품화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애니메이션 '아이 삼국유사' 제작비로 5억여 원이 투자돼 당장 상품을 만들 여력은 없지만 투자비가 회수되는 대로 상품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권은태 대표는 "이 정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면 족히 10억 원이 들지만 직접 새로운 기법, 시스템 등을 활용, 제작비를 크게 낮췄는데도 5억 원이나 들었다."며 "애니메이션의 경우 관련기관 등으로부터 투자나 지원을 받아 제작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의 경우 영세기업에서 보조금 한 푼 없이 몽땅 자비를 털어 제작하는 모험을 감행했고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지역적·한국적인 것이 경쟁력
마루는 지역 및 한국의 고유 색깔을 가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자 경쟁력이라고 자신한다. 지역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기 위해선 문화적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것.
'아이 삼국유사'의 히트 비결도 엇비슷한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우리 고유의 문헌을 바탕으로 경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방식과 컨셉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게 마루의 지론이다.
차기작품도 지역색, 한국색을 최대한 살려 추진할 계획이다. 실제 경주의 경우 세계으로 찾아보기 힘든 천년고도인데다 문화유산과 세계 보편적 스토리 및 소재도 많은 만큼 이를 십분 활용, 이야기로 만들면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
권 대표는 "독일 라인강의 경우 인어공주 동상 달랑 하나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는 등 특별한 것이 없는 도시들도 세계적 문화·역사·관광도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데 문화 유산의 보고인 경주 등 우리나라 고도시들은 말할 것도 없다."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기본적 문화적 자원과 우수 인력 등을 잘 활용, 스토리화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지역업체 협력 강화
지역 업체들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현재 대구 서문시장 내 아동용 내의류 제조업체인 'ESP 니트'와 계약을 맺고 강아지 캐릭터인 '푸티(POOTY)'를 부착, 판매하고 있고 전국 유통망을 가진 생활용품 제조판매업체인 뉴라이프에도 '루디&프랜즈'란 캐릭터를 도시락, 도마, 밀폐용기 등 생활용품에 사용, 전국 대형소매점 및 해외로 판매하고 있다.
또 지역 출판사인 홍진P&M와 손잡고 5권짜리 '아이 삼국유사' 시리즈 필름북을 출판, 대형서점 및 대형소매점에서 판매할 계획인 등 지역 업체와 함께 세계적인 업체로 동반 성장을 꿈꾸고 있다.
권 대표는 "서울지역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산업의 경우 업체와 문구·완구·용품 관련 제조업체, 지원기관, 투자기관 등이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며 "그러나 비수도권 업체로는 최초로 방송3사에 작품을 납품했고 지역 캐릭터 업체의 캐릭터를 제조판매업체와 협력, 전국으로 유통시킨 점 등 대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지역 관련 업체들이 힘을 합쳐 전국 무대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표 및 전망
마루는 서울에서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납품 및 사용권을 계약하기 위해 대구로 오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또 지역에서 최초로 애니메이션을 해외로 수출하는 꿈도 꾸고 있다.
권 대표는 "서울 진출을 시도할 때 '대구에서도 애니메이션 합니까'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지역에 대한 평가는 빵점이었지만 지금은 마루커뮤니케이션즈라는 호칭 대신 '대구'라는 말로 우리 업체를 부를 정도로 인식과 평가가 바뀌었다."며 "대구에서 우리 손으로 캐릭터애니메이션 산업이 괜찮은 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고 지역에서도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캐릭터애니메이션 산업의 경우 제작기간이 길고 투자에서 회수까지 사이클이 너무 긴 것이 가장 힘든 점이지만 자금 사정이 나아지면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 제작 활동 등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지자체나 지원기관의 지원이 전무했지만 최근 대구시에서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부가가치 효과는 엄청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관련 제조업체의 매출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이를 본 아이들의 한국, 지역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고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기게 만듭니다. 비록 아직 많은 돈은 벌지 못했지만 '해보니 되더라'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지역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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