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개의 에펠탑 위에 누워 유혈과 함께 펄럭거리고 있는 심장 같은, 마치 고어 영화의 한 기법처럼 느껴졌던 그 영화 포스터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번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사랑해, 파리'를 직접 관람 하고 나서부터다. 예매 시작과 동시에 입장권이 매진돼버린 이 매력적인 영화를 보기 위해 맥주 두 병과 담요 한 장을 싸들고 부산 요트경기장에서 열린 야외상영관을 찾았다.
빈자리 하나 없이 들어찬 관객의 물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실내와는 냄새부터 다른 야외극장이었다. 약 4천5백 개 관람석 앞의 대형스크린으로 쏟아져 나오는 파리의 정취로 이곳 부산의 밤은 마치 파리의 밤처럼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사랑해, 파리'는 파리 구역 20곳 가운데 한 곳을 골라 20명의 감독이 제각기 제한된 5분 안에 사랑에 관해 풀어낸 옴니버스식 영화다. 내용 전반에는 프랑스식의 감각적인 영상이 깔려있다. 5분이면 어떤 상황의 단면 밖에는 보여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영화는 그 5분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듯, 파리의 일상을 5분 안에 농밀하게 감성 위주로 풀어내고 있다. 5분 동안 키스를 하고, 5분 동안 길을 걷고, 5분 동안 함께 저녁을 먹는 상황의 연속이 퍼즐처럼 엮여 사랑은 지속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5분 안에 사랑의 핵심이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먼 부산의 땅에서 그의 목소리가 환타지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건, 우리 역시 그 지나가는 5분 안에 실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류현정(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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