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오픈 토크가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한·일 양국 대표 감독의 만남은 이날 해운대에 몰려든 취재진과 팬들의 관심에서도 확인됐다. 행사장에는 100여 명에 이르는 취재진과 400여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봉 감독은 '괴물'이 '한국 영화의 오늘' 섹션에, 고레에다 감독은 최신작 '하나(Hana)가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 각각 초대받아 부산을 찾았다. 고레에다 감독의 대표작인 '아무도 모른다'는 2004년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이날 오픈 토크는 한마디로 내용에 충실한 '알짜' 좌담회라고 평가할 수 있다. 두 감독은 각각의 작품을 열거하며 작품의 변화 추이와 평소 궁금했던 점들을 연이어 서로 질문했다.
사회를 맡은 김영진 필름2.0 편집위원의 역할이 무색했을 정도. 50여 분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김 위원은 2~3가지 질문을 하는 데 그쳤다.
관객의 몰입 정도도 시험장을 방불케 할 정도. 환하게 불을 밝힌 행사장은 두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관객 때문에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작품을 할 때마다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작품을 끝낼 때면 부산영화제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봉준호 감독과의 오픈 토크가 이번 방한의 가장 큰 이벤트"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고레에다 선배를 만나 영광"이라면서 "11년 전 밴쿠버 영화제에서 만난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매혹 그 자체였다"며 만남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방의 신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는 놀라움을 주는 영화다. 고레에다 감독의 5번째 작품인데 전작들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스트레이트 스토리(Straight Story)'를 만났을 때의 충격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대극이라는 점도 새로웠고 예전 작품보다 편안하고 낙관적인 느낌을 받았다.(봉준호 감독. 이하 봉)
▲지금 말씀해 주신 얘기를 원고에 그대로 옮겨 일본으로 가지고 가고 싶다. 개인적으로 만들면서 즐겁게 작업한 영화다. 봉 감독의 '괴물'은 일본에서 개봉된 첫날 극장에서 봤다. 봉 감독이 내가 사극을 만들어 놀랐다고 했는데 나는 봉 감독이 '괴물'을 찍었다는 데 10배 정도 더 놀랐다. 괴수 영화를 만들면서도 이를 인간 드라마로 엮어냈다는 점이 멋졌다.(고레에다 감독. 이하 고)
--봉 감독은 영화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인물이나 사물을 보는데 이런 관점이 재미있다.
▲인물 간의 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물을 친근하게 바라보는 거리, 멀리 떨어져서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거리 등이 있을 수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형사들에 대해 조롱하는 냉소적인 시선이 전반부에 깔리지만 후반부에서는 범인을 애타게 잡고 싶어하는 형사들의 마음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괴물'은 측은지심 같은 시선이 많았던 영화다.(봉)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캐릭터는 미워할 수 없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실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의 보도는 "엄마가 나쁘다"라는 관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영화에서 엄마가 누가 보아도 나쁜 존재로 등장하면 관객이 안심을 해버린다. 안심을 하면서 '이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상황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관객에게 이런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관객에게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던져주고 싶었다. 관객의 관심을 계속 모으면서 관객과 상황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괴물'은 다른 괴수 영화와는 등장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영화가 시작된 지 14분이 지나면 괴물이 등장한다. 미국과 일본의 전통적인 괴수영화에는 1시간이 지나야 괴물의 꼬리 정도 보여주는 것이 통상적인 전개 방법이다. 관객이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을 때 괴물을 등장시켜 장르의 문법을 깨고 싶었다. 일상을 살다고 갑자기 재앙을 당하게 되는 느낌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봉)
--봉 감독은 장르 영화에 익숙한데 고레에다 감독 영화는 장르를 느끼기가 힘들다.
▲그러고 보니까 장르 영화에 도전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 만든 '하나'도 사무라이 사극이라고 하는데 사무라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일부러 안 집어넣었다. 성격적으로 뒤틀린 사람이라 성격상 다른 사람이 찾지 않는 지점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공포영화를 만들면 하나도 안 무서운 공포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하나'는 시대극인데 사실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은 시대극 같지 않다.
. ▲배우들에게 "시대극이라 해서는 안된다"는 것들을 염두에 두지 말고 연기하라고 주문했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는 현재 일본에서 쓰는 현대인의 말이다. 외래어만 쓰지 말자고 약속했다. '하나'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연장선에 놓고 찍은 작품이다.(고)
--봉 감독의 작품은 비 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비 내리는 장면을 좋아하는데 찍을 때는 죽고 싶다. 배우들의 스트레스와 스태프들의 고통이 심한 장면이 바로 비 오는 신이다. 비 오는 장면은 빗소리뿐 아니라 화면 밖으로 물기가 배어나오는 축축한 느낌 등 공감각적인 느낌을 한번에 줄 수 있다. '괴물'에서 아버지가 죽는 장면에서 센 비가 온다. 이때 송강호 씨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강물도 넘치듯 말듯 했다. 물의 이미지가 넘쳐나는 신이었다. 이 장면 하나를 17일간 찍었다. 볼 때는 좋지만 찍을 때는 생지옥 같았다.(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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