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하철 역사 사고 "나 몰라라"…공사측 책임 회피

지난달 전동스쿠터에 깔린 부상자 보상

김윤선(66·여) 씨는 2주가 훌쩍 지났지만 지난달 25일 오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 가려고 딸과 함께 지하철을 탄 것이 그 시작이었다. 대구지하철 2호선 범어역에서 내린 김 씨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다 위에서 굴러 떨어진 지체장애인의 전동스쿠터에 깔렸다.

"휠체어에 깔려 살려달라고 소리소리 지른 것 외엔 기억이 없어요." 의식을 잃은 김 씨는 "눈을 떠보니 병원의 하얀 천장과 간호사 모습이 들어와 아직까지 살아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왼쪽 발목 부위가 부러지고 허리를 심하게 다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꼼짝도 못하게 됐다.

"대소변도 도움을 받아야 하고, 혼자서는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사고 때문에 추석날 외지에 살고 있는 아들·딸, 손자·손녀 모습도 볼 수 없었지요."

하지만 김 씨의 어려움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대구지하철공사가 지하철 역사 내에서 사고가 발생했지만 안전사고 보상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공사에서 나온 사람이 이번 사고는 제3자에 의한 사고이기 때문에 회사 규정상 공사의 책임이 없다며 사고를 낸 장애인에게 보상을 받으라고 했어요."

그날 함께 사고를 당해 무릎 타박상을 입은 딸 백혜경(30) 씨는 병원 치료비를 낼 수밖에 없었다. 백 씨는 "아무리 장애인이 부주의로 사고를 냈다지만 안전사고를 책임져야할 지하철공사가 지하철 역사 내에서 사고가 났는데도 내부규정을 들어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상식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더구나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인력부족으로 모든 것을 감독할 수 없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군요." 백 씨는 "앞으론 겁나서 지하철을 탈 수 없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대해 대구지하철공사 운수팀의 한 관계자는 "회사 내부규정인 '사상사고 처리규정'에 따라 제3자에 의한 사건사고는 회사 면책사유에 속하기 때문에 보상을 할 수 없다."며 "다만 가해자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점을 감안해 1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하철 역사 전부를 일일이 감시·감독하기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곳곳에 안전 경고판을 붙여놓았다."며 "이를 어기고 부주의로 사고를 낸 사람이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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