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젠 '민물 이야기(?)'…거액 상금 걸린 유료낚시터

지난 16일 오후 8시 30분 대구 인근 한 실외 낚시터. 300여 명의 낚시꾼들이 저수지 둘레를 빼곡히 에워싼 채 월척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왜 이리 많냐고?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구만. 고기 1마리 잘 낚으면 600만 원이야." 한 40대 낚시꾼은 취재기자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 저기 '검척'이라는 함성이 터졌다. 자신이 잡은 물고기 길이를 재달라는 얘기.

"현재 1등 25번 자리 65cm, 2등 5번자리 63cm, …, 5등 120번자리 55cm" 낚시터 본부석에서는 30분 주기로 '현재 순위'를 떠들어댔다.

동네마다 문을 열었던 '바다이야기'가 검·경의 강력한 단속으로 사라진 이후, '민물 이야기'가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대도시 주변 유료낚시터에서 거액의 상금을 내건 사실상의 '변종 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이날 낚시터는 오후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대회를 진행, 3시간 동안 가장 큰 물고기를 잡는 사람에게 600만 원을 준다고 했다. 입장료는 5만 원. 12시간 기준으로 2만 원을 받는 기존 낚시터보다 2배 이상 비싸지만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안될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2등은 200만 원, 3등은 50만 원, 4등 10만 원, 5등은 본전인 5만 원의 상금이 걸려 있었다.

이날 밤 '꽝'이된 뒤 낚시 가방을 싸던 최모(43·경산시) 씨는 "오늘은 성적이 안 좋았지만, 지난 주 3등으로 50만 원을 벌었다."며 "요즘은 오직 월척 생각밖에 안나 회사에 월차를 내고 낚시터를 찾아오는 형편"이라고 했다.

경북 구미에서 왔다는 이모(33) 씨는 "예전에 바다이야기를 자주 이용했는데 정부가 갑작스레 불법이라고 몰아붙이는 바람에 사는 재미가 없어하던 중 친구 소개로 낚시터를 알게됐다."며 "상금을 못 탄 채 입장료만 벌써 50만 원을 넘게 썼지만 조만간 600만 원을 따면 한순간에 만회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날 오후 대구 인근 또 다른 낚시터. 이날은 대회가 없었지만 전날인 15일 대회가 열려 280여 명이 몰렸다고 주변 상인은 전했다.

이 상인은 "수·목·일요일 3번 낚시대회가 열리는데 여기 1등 상금은 500만 원"이라며 "최근 한두달 사이에 갑자기 낚시꾼이 많아졌다."고 했다.

이에 따라 '과거 방식'을 고수하는 낚시터는 고사 직전이다. 경주시에서 유료 낚시터를 운영하는 김모(39·여) 씨는 "요즘 손님이 70%나 줄어 남편은 다른 일을 해 생계를 꾸려나간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구 인근, 구미·포항 등 규모가 큰 도시 주변에 유료낚시터를 만들려는 업자들이 꾸준히 생기고 있다. 한 퇴직자(62)는 "친구로부터 '성주에 상금을 거는 낚시터를 만들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며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직히 요즘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유료 낚시터는 현재 대구 9곳, 경북 53곳이지만 낚시터는 일정 요건만 갖추면 쉽게 영업허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거액의 상금을 내걸고 있는 '변종 낚시터'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경찰 한 관계자는 "최근 낚시터 도박 관련 신고 및 문의가 많아 법률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하지만 판돈을 계속 불리면서 돈을 따는 '도박'과 달리 낚시터는 일정 입장료만 내면 상금 수혜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처벌 법규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김한곤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암울한 경기가 사행성 심리를 자꾸만 부추기고 있다."며 "건전한 놀이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할 것"이라고 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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