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김원중
서울대학교를 안 나왔습니다
미국 유학도 못 갔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살았으니까요
기독교 장로도 못 되었습니다
일요일도 하루 종일 일했으니까요
시골 초등학교만 빼고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12년 꼬박 야간에만 다녔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두고
박사, 교수, 시인이라고 불러줍니다
여학교의 단발머리 여학생 제자 천 명
영남이공대학의 국어수업 받은 제자 이천 명
대구 한의대에서 배운 제자 육백 명
포항공대 제자 사천 명이나 되지만
지금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청구 푸른마을 4층 아파트
우리 집 방구들 위에 혼자 누워서
허무한 이력서를 다시 써 봅니다
이력서는 개인의 역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력서'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인간의 보편적 이력이 보입니다. 인간의 삶은 개인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나를 두고 박사, 교수, 시인이라고 불러줍니다'나 '여학생 제자 천명/ 국어수업 받은 제자 이천 명'등의 이력에서 개인의 특수한 삶을 봅니다만 이어지는 '지금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서 보편적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맺은 인연들은 언젠가는 떠나게 되고 혼자 남아 허무의식에 젖게 마련입니다. 마침내 혼자서 먼 길을 떠나지요.
'이력서'는 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삶의 도정(道程)의 기록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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