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수능 시험 표준화되어야 한다

대학선발의 기본적인 전형자료인 수학능력시험은 표준화하고, 수험생은 준비된 과목을 수시로 응시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수학능력시험을 표준화한다는 것은 성적의 분포를 일정하게 해 둔 상태, 대개는 주로 정상분포곡선이라는 통계학적 모양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상위, 중위, 하위의 성적들이 일정하게 분포된 상태가 되도록 문제들의 곤란도를 조정한 것을 말한다.

표준화되면 작년에 받은 점수나 금년에 받은 점수나 성적의 의미로는 같은 것이다. 지능검사가 표준화된 검사의 대표적인 것이고, 미국의 TOEFL이나 SAT 등도 그렇게 표준화된 것이다. 우리의 수능시험도 표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그 필요의 절실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었고, 교육부와 전문담당기관이 해마다 치러야 하는 시험 그 자체에만 몰두한 나머지 표준화를 위한 다소 복잡한 작업을 시도할 여력이 없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준화되지 않으면 해마다 시험의 곤란도가 일정치 않은 것도 문제이거니와, 수능시험과 같은 대규모의 시험은 절차·비용·관리 등이 복잡하여 1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는 실시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그 시행시기가 고3의 말기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이런 수능시험에는 수험생이 결사적으로 거기에 총력을 다하여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엔간히 준비된 교과목도 한 점수를 더 따기 위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고, 학습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수능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온통 안고 살아야 한다. 한번 실패하면 그 실패로 인하여 1년을 더 기다리거나, 아니면 자신이 바라던 진로와 대학을 영원히 바꾸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러므로 수능의 반영률이 높은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사력을 다하여 점수따기에 임해야 한다. 입시의 일차적 지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들이 점수따기의 공부에 매몰된 상태, 그것은 옳은 공부도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창의적 학습이나 균형적인 성장을 위한 경험의 기회마저 빼앗아 버리며, 경쟁적 심리에 시달린 긴장과 피로는 젊은이들의 심신을 심각하게 망가뜨린다.

미국의 대학전형 자료인 SAT는 우리의 수학능력시험과는 성격상 크게 다르다. 그것은 표준화된 것으로서 준비된 학생이면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면 다시 볼 수도 있고 어느 수준에 이르면 그것으로 끝내도 된다.

열심히 준비했으면 봄에 본 시험의 성적보다 가을에 본 시험의 성적이 더 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봄에 본 시험의 성적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면 가을에 그 시험을 다시 볼 필요가 없고 이제 다른 활동을 해도 된다.

반드시 고3에서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볼 수 있다. 만약 시험의 범위나 방식에 변화가 생기면, 그 이전의 성적과 지금의 성적을 비교하여 환산하는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 한꺼번에 모든 교과를 동시에 치르게 할 필요도 없고 준비된 교과를 준비된 시기에 보게 하면 된다. 그것은 표준화된 시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수능시험이 표준화되면 해마다 곤란도가 들쑥날쑥하여 지원코자 하는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데 생기는 혼란을 피할 수가 있다. 표준화 상태에 있으면 예년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성적이면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에 지원하기에 안전한가에 대한 예상이 해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면 해마다 입시전문기관들이 시험의 곤란도와 점수의 분포를 참고하여 어지럽게 발표한 각종의 새로운 조견표에 혼란당할 필요가 없다.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가 예외적으로 급격히 도약하였거나 급락한 경우가 아니라면, 수험생은 스스로 목표를 세워 자신이 성취한 내신등급을 고려하여 안정된 준비를 할 수가 있다.

새로운 200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대학선발제도에서는 수학능력시험의 성적과 내신성적을 등급화하기로 하였다. 수능의 등급화와 내신의 등급화는 변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학들이 불만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있다. 등급화는 자연점수의 비교로써 생기는 소모적 점수따기 경쟁을 막기 위한 취지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능과 내신의 일회성, 즉 한 번의 기회로서 결정되는 한에서는 점수따기 경쟁이 해소될 수가 없고, 변별력에 문제가 있는 한에서는 대학이 변별을 위한 시도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의 대안으로 우리는 수능을 표준화하여 수험생으로 하여금 수시로 준비된 과목을 볼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내신성적도 총점의 계산보다는 최고 성적의 학기 혹은 학년의 것만을 참고한다든가 하여 성취도와 잠재력을 평가하고, 학생이 성장과정에서 이룬 각종의 학습경험을 폭넓게 평가하면서 다원적인 변별 자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돈희(민족사관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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