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그 많던 도토리 다 어디로…

출근길이었다. 중년의 한 남자가 손에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묵직해 보였다. 퍼뜩, 짐작되는 게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은행나무 가로수를 장대로 마구 후려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남자도 방금 거기 있었던 게 분명했다.

銀杏(은행)이 노랗게 익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전국의 은행나무들은 얌체 같은 털이族(족)들로 몸살을 앓는다. 막대기로 후려치고, 돌로 쿵쿵 찍어대고, 망치로 때리고, 발로 차고…. 학대도 이런 학대가 없다. 나무에 대한 훼손은 말할 것도 없고 차량통행 방해나 교통사고 등 안전사고 위험도 적지 않다. 마구잡이 落果(낙과)로 인해 길에는 악취가 진동한다.

털이족들은 야밤중도, 새벽도 가리지 않는다. 며칠 전, 대구에서는 한밤중에 은행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뒤흔드는 방법으로 은행을 무려 50kg이나 남획한 남자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산의 도토리나무들도 몸살 앓기는 마찬가지다. 도토리나무가 있는 곳마다 다람쥐보다 더 날쌘 사람들이 헤집고 다닌다. 심지어 며칠 전 추석 명절에도 도토리족들은 도토리나무를 흔들고 있었다. 보다 못해 한소리라도 했다가는 대번에 "이 나무가 당신 거요?"라고 쏘아붙인다. 오히려 보란듯이 더욱 왁살스레 나무를 뒤흔든다.

하기야 서울 청계천 사과나무 사건은 우리네 의식 수준을 거울 보듯 보여준다. 서울시는 청계천에 옮겨 심은 116그루의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면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첫 해 수확한 사과는 달랑 9개. 올해는 2천500여 개의 사과가 열렸지만 채 익기도 전에 실종되기 시작했다. 사과나무 지킴이들이 등장하고 24시간 순찰로 사과 사수작전을 벌였지만 9월 말엔 기껏 20여 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손 닿기 힘든 위치에 있는 사과들만 겨우 남았다. 아예 자루를 갖고 수십 개의 사과를 따다 경찰에 걸린 한 남자 왈 "덜 익어 시큼한 맛이 소주안주로 딱"이라나. 아마도 내년 청계천 사과나무 가로수에는 그물이 둘러쳐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부끄러운 自畵像(자화상)이다.

달포 전, 일본에 갔을 때였다. 그곳 사찰에서 사람들이 물 마시는 풍경이 우리와 무척 달랐다. 비치된 바가지를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입에 대고 마시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바가지로 물을 뜨되 자기 손바닥에 부어 마셨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바가지에 입을 댄다는 것은 크나큰 실례이자 부끄러운 행위라는 것이다.

공용 바가지를 입에 대고 마실 줄만 아는 우리와 자기 손바닥에 물을 부어 마시는 일본인. 사소한 듯 하나 실상은 아주 큰 차이다. 우리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만 그들은 내 것이 아니므로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자연만큼 우리에게 관대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사람은 이해관계에 따라 어제의 벗이 오늘은 원수가 되기도 하지만 자연은 절대 우리에게 먼저 등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이 한 번 화를 내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스터 섬(Easter Island)의 교훈은 그 좋은 예다. 남태평양상의 이 섬은 현대인에게는 미스터리다. 16세기에 상당한 수준의 예술적 수준을 보이며 전성기를 이루었지만 어느날 섬 전체가 갑작스럽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환경파괴가 원인이었다. 주민들은 열정적인 종교 활동의 일환으로 거대 석상 세우기에 골몰했으며, 석상 운반용 통나무 레일을 만드느라 숲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1600년 무렵엔 나무가 완전히 사라졌다. 토양 황폐, 작물 수확량 감소, 인구 격감 등이 잇따랐다. 섬 전체에 산재해 있던 평균 6m 높이의 거대 석상 600여 개도 19세기 초에 거의 모두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원시'야만상태로 되돌아갔다.

은행과 도토리의 실종, 그리고 이스터 섬. 단지 뚱딴지 같은 얘기일까. 작은 잘못이 고쳐지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부디 내년 이맘때는 청계천에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전국의 은행나무와 도토리나무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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