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핵우산 공약이 북한 핵실험으로 촉발된 동북아에서의 핵개발 도미노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까.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우방들에 대한 '핵우산' 공약을 거듭 확인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실험이 계속 이어지거나 안보위기가 극단적으로 고조될 경우 핵개발 경쟁을 막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더욱이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은 이미 상당한 핵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여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폭탄을 제조할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 CNN은 18일 전문가들 분석을 인용, "일본은 수개월 내, 한국은 1, 2년 내 핵개발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 핵실험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우방들에 대한 방위 공약은 확고하다."고 다짐하는 것도 이런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날 일본을 방문, 아소 다로 일 외상과 회담 후 " 미국은 일본을 방어해 줄 것이며 그럴 능력도 있다."고 역설한 것도 이런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역시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이다. 그렇지 않아도 핵개발 구실을 찾아온 일본에게 북한의 핵실험은 핵개발에 나설 명분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핵무장은 곧바로 한국의 핵개발 의욕을 부추기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한 중국의 핵대응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곧바로 대만의 핵개발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공산이 적지 않다. 미국이 확고한 대일 방위 공약을 다짐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본이 핵개발에 본격 나설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많지 않지만 일본 정계에서 그간 보수 정파를 중심으로 핵개발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기는 힘들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폭풍에 편승, 무혈 입성하다시피 한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핵개발 요구가 더욱더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 일본 정가에서는 지금 우려했던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일본 고위인사들이 드러내 놓고 핵 무장론을 거론, 일본의 핵 무장론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 것이다. 아소 외무장관은 이날 국회 답변에서 일본 핵무장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 15일 자민당의 나카가와 정조회장이, "핵을 가지면 공격당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반격도 가능하다."고 주장한 지 사흘 만의 일이다.
실제 미국의 핵 전문가들은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수개월 안에 핵폭탄을 만들 충분한 기술과 설비가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2004년 말 현재 43.1t이나 보유하고 있고, 이는 세계 제4위의 규모다.
결국 문제의 핵심 키는 미국이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이 일본을 계속 미국의 핵우산에 둘 지, 아니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핵무장을 용인할지가 최대 관심사이다. 미국이 일본의 핵무기 개발을 눈감아 준다면 일본의 핵무장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그럴 경우 동북아는 자칫 세계적인 '화약고'로 등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현재로선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별다른 변화의 조짐은 없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 핵포기 설득 노력이 끝내 실패, 북한이 연속 핵실험을 강행하고 중국·러시아와 미국·일본이 대립하는 극한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될지 속단키 힘들다. 미국이 파키스탄의 핵 보유를 묵인한 것도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고, 최근 인도의 핵 개발을 지원한 것도 21세기 패권을 노리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이었음을 감안할 때 현재의 핵우산 정책에 변화가 초래될 개연성은 농후하다.
과거의 핵농축 사실이 드러나 한바탕 소란을 겪었던 한국도 일본이 핵무장에 나설 경우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 의회와 언론에서도 이런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 전문가들은 한국의 핵기술이 향후 1, 2년 내 독자 개발이 가능할 정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에 저항해가면서까지 핵개발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때문에 한국이 독자 개발은 힘들지 몰라도 주한 미군에 다시 전술 및 전략핵이 배치될 것이라는 견해가 만만찮다. 한국은 지난 1958년 처음으로 핵무기가 배치됐으나 지금 국내에는 핵무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한때 핵개발을 추진했던 대만도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핵개발에 나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대만은 장제스(蔣介石) 총통 시절 국방부 직속 기관으로 설립한 중산(中山)과학원을 통해 두 차례나 핵개발에 적극 나섰던 전력을 갖고 있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95년 방미로 인해 중국의 군사적 압력이 가중되자 핵개발을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심지어 뉴욕 타임스는 "북한을 포함해 핵보유국이 9개국으로 늘어났고 핵물질이나 핵기술을 갖고 있는 잠재 핵보유국도 40여개국에 이른다."면서 핵개발 경쟁을 우려했다. 동북아를 포함한 전세계의 핵개발 도미노 여부가 기로에 선 셈이다.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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