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즘 어떻습니까] 도승회 전 경상북도 교육감

"농작물은 정직합니다. 어느 정도 사랑을 주고,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결실이 달라집니다. 돌이켜보면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학생들은 사랑을 주는 만큼 성장합니다."

도승회(71) 전 경상북도 교육감은 퇴임 두 달여만에 대농(大農)이 됐다. 고향인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350여 평의 농토에 갖가지 작물을 기른다. 배추 800포기, 고추 400포기에 무, 상치, 파, 열무, 들깨 등 채소 종류는 다 심겨 있고 복숭아, 대추 등의 과수도 있다. 가장 많은 매실은 지난 봄에 120kg이나 수확했고, 내년에는 2배쯤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다 보니 일손이 이만저만 가는 게 아니다. 대구에 살고 있지만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꼬박 성주에 내려가 농사에 매달린다. 수확물은 전부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시골 내려오면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예요. 농사는 물론이고 마당에 잡초 뽑고, 온돌방에 불 때고, 물 길어오고 바쁘게 보냅니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많이 움직여야죠. 그런 의미에서 수확할 때는 친구들을 꼭 부부간에 불러서 직접 거둬가게 합니다."

도 전 교육감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978년부터다. 영일군 기북중학교에 교감으로 갔을 때 빌린 집에 딸린 텃밭에 채소를 심기 시작한 이후로 농사는 부부의 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내자가 농사에 재미를 붙인 것도 그때였지요. 남편이 새벽부터 밤중까지 학교에 나가 있으니 소일거리로 그만한 게 없었을 겁니다."

도 전 교육감은 수학과 출신. 당시 교감이었지만 일주일에 대여섯 시간은 수업을 했다. 교사들이 출장을 가거나 수업이 비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교감 선생님의 수학 특강이 진행됐다. 그 결과 가난한 시골 마을 학생들의 학력이 눈에 띄게 올라갔고, 고교 입학 성과도 두드러지게 좋아졌다. 그가 다른 학교로 옮긴 뒤 마을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웠을 정도.

1990년 감포중.종고의 교장으로 갔을 때도 수업을 놓지 않았다. 강단에 서는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에서다. 방학 때마다 교장 선생님의 수학 특강이 계속됐다. "지금도 감포에 가서 횟집을 가면 돈 받으려는 곳이 없어요. 다들 그 때 일을 고마워하는 것 같습니다."

평생을 경쟁력 있는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 철학과 함께 살아온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경북 교육청 장학관 시절 전국에 없던 중·고교 학력 평가를 실시하고, 출신 학교별로 통계를 내 각 학교를 자극한 것도 그 같은 철학에서 비롯됐다. 당시 학교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방과 후에 특강을 열었다.

"변변한 학원을 찾기 힘든 여건에서는 학교 차원의 보충 강의가 최고의 교육 서비스였습니다.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열기를 띠고 있는 방과후학교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교육감이 된 뒤 그가 가장 정성을 기울인 것은 교육복지였다. 전국 처음으로 난치병 학생 돕기라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교육감 재임 시절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 바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경북의 모든 교육가족들이 정성을 모은 덕에 성공할 수 있었지요."

난치병 학생 돕기 운동은 이후 대구시 교육청에서 받아들여 경북과 함께 큰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다른 시·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4월 보건의 날에는 교육감에게 표창이 주어질 예정이었지만 그의 간곡한 요청으로 경북도 교육청이 대통령으로부터 기관표창을 받기도 했다.

"공직생활이 48년 3개월입니다. 교육감 8년은 덤으로 한 거죠. 일당백의 참모들과 많은 교육 가족들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도와준 덕분에 큰 탈 없이 공직생활을 마감할 수 있어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그가 궁리하는 일은 대부분 부인을 위한 것들이다. 내년 초부터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를 함께 여행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바쁜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자식들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했지만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평생 해외 여행 한 번 못 했죠. 이젠 내가 봉사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위암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건강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요즘도 테니스를 즐겨 한 번에 4세트씩 2시간여를 칠 정도. 대구서든 성주서든 함께 할 파트너만 있으면 테니스를 친다.

건강에 문제 없고, 자식들도 나름대로 성공해 아무 근심거리가 없지만 교육에 대한 걱정은 좀체 털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경북 교육 가운데 가장 발전이 늦은 분야를 외국어 교육으로 꼽았다. 소규모 시골 학교가 많아 원어민 교사 유치, 교원 연수나 교재 제공 등에 어려움이 많은 탓이었다. "다행히 현 교육감의 업무 능력이 뛰어난데다 김관용 도지사가 영어마을 3개 조성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으니 내가 못다한 부분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무슨 일을 할 때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평생의 좌우명을 잊지 않는다는 도 전 교육감은 재임 때의 열정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지금 교육이 어렵다고 하지만 모두가 몸으로 부딪히고 정성을 다하면 뚫고 나갈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농사를 짓듯 학생 하나하나에 사랑을 쏟으면 어떤 문제든 풀립니다. 교육가족들은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 교육에 무한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으면 안 됩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