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봉사 외길 정윤정씨 "아~입 벌리세요 닫힌 마음 열립니다"

십 년 동안 꼬박 남을 위해 살았다. 마치 자신의 가정을 돌보듯 혼자 사는 노인 밥 해주기와 목욕시켜주기 등을 해왔다. 6년 전부터는 정신장애인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벗이 됐다. 그는 이 일 자체를 기쁨으로 여긴다. 지난 19일 받은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장상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따라왔다. 상금 20만 원은 지체장애인들과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약속했다.

정윤정(42·여·경북 경주시 황성동) 씨는 누가 직업을 물으면 "자원봉사"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17일 오후 경주시보건소 정신보건센터에서 만난 그는 봉사정신으로 똘똘 뭉친 작은 여전사였다. 한마음 정신보건재활센터(센터장 전미숙)에 일하러 나간 장애인들을 위해 손수 만든 도넛, 겨울을 대비해 부드러운 털실로 만든 보온 및 수면을 도와주는 양말, 종이접기 재료 등 손에는 바리바리 싼 보따리 3개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얼굴 가득한 잔잔한 미소는 떠날 줄 모른다.

10년 전 대한적십자사경북지사 황성목련봉사회(회장 이정숙) 활동을 계기로 자원봉사에 발을 디딘 정 씨는 "남들과 다른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며 정신장애인들을 돕는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들의 정신연령은 5, 6세 아이 수준. 요리를 가르치면 불에 다 태워버리기 일쑤고 종이접기를 해도 다 찢어버리는 등 시작부터 끝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고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음도 좀처럼 열지 않았다. 먹을거리를 줘도 "독이 들었다."며 거부하고, 인사도 하지 않고 가버리는 경우가 다반사. 정 씨는 "허탈한 기분이 들 때도 많았지만 이들을 진정으로 도우려면 견뎌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경주시보건소 김미경 소장은 "정신보건센터 초창기 멤버로 장애인들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며 "6년 동안 묵묵히 봉사해줘 이번에 큰 상까지 받게된 것"이라고 자랑했다.

정 씨가 봉사를 시작한 동기는 남다르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거부할 수 없는 피 때문이란다. 재주가 참 많았던 아버지는 아픈 사람들에게 간단한 치료를 해줘 집이 동네약국이라 불릴 정도였으며 각종 기계가 고장나도 언제나 달려가 고쳐주는 만능 봉사자였던 것. 정 씨는 이런 아버지가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똑같은 길로 들어섰다. 업보일까? 재주 많은 것도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 풍물놀이, 비즈공예, 한지공예, 풍선아트, 댄스스포츠 전문과정을 수료하고 정신보건센터 강사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4년 전 경주시 청소년수련관 민속예술단 부관장, 3년 전 대구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명예 식품위생감시원으로 위촉해 활동한 경력도 갖고 있다. 그는 "피는 못 속인다."며 "봉사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남편 윤춘섭(47) 씨도 든든한 응원군. 가끔 "그 열정으로 돈을 벌러 다녔으면 집을 한 채 샀겠다."고 농담삼아 얘기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주는 아내는 그들에게 천사일 터"라고 치켜세운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 역시 "가장 큰 피해자는 자식이지만 어머니가 봉사하러 나갈 땐 혼자서 식사챙겨 먹는 게 당연시됐다."고 했다.

"이젠 장애인들을 며칠 보지않으면 보고 싶어지고 걱정도 됩니다. 봉사자들과 장애인들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결혼까지 하게 되는 경우도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제 삶의 동반자입니다."

정 씨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가장 기쁜 시간이다. 도넛을 구우며 얼굴에 기름이 튀겨도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요리를 준비한다.

이들의 변해가는 모습은 큰 보람. 군대에서 정신분열증을 보여 말도 없고 소심했던 한 장애인이 웃고 농담하며 밝아진 모습을 보이고 부랑자처럼 어두웠던 장애인이 열심히 일을 배울 땐 뿌듯하기도 하다.

"월요일 홀몸노인 돕기, 수요일 정신보건센터, 금요일 장애인복지관 등 자원봉사 일정이 빡빡하게 잡힐수록 삶의 의욕이 샘솟네요."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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