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치매 시할머니로부터의 분가

1990년 12월 10일은 결혼해서 8년 만에 분가한 날로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내 기억 속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내가 결혼할 당시 시부모님께서는 일 때문에 부산에 계셨고 나는 시할머니와 시동생들이 살고 있는 대구 본가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5년간은 제사니 생신이니 크고 작은 집안 대소사가 있긴 했지만 크게 힘들다는 생각 없이 지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던 해 90세가 되신 시할머니께서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먹을 것만 찾고, 시도 때도 없이 입은 채로 볼일(?)을 보고, 음식만 보이면 이불 속에 감추고, 내 손길이 필요한 3세·1세 된 아이들에, 온전한 정신이 아닌 시할머니,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듯 힘든 생활이 1년, 2년 계속되면서 지친 몸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이런 생활이 언제 끝이 날까?"하는 막연함이었다. 시부모님이 일을 정리하고 오셨으면 하는 바람은 컸지만 정작 "너무 힘드니 분가시켜 달라."는 말은 입 밖에도 못 내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마음의 병이 큰 탓이었을까? 시할머니께서 발병한 지 3년이 다되어 가던 어느 날 새벽, 나는 심한 두통과 함께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다. 소식을 듣고 올라오신 아버님께서 "그동안 고생했다. 분가할 집 알아보거라."하셨다. 혹시라도 아버님 마음이 바뀌시지 않을까? 서둘러 이사갈 집을 구해 되도록 빨리 이사날짜를 잡았는데 보일러 연결이 늦어져 내 애간장을 태웠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나는 아버님께 "사람이 살지 않아서 늦어지는 것 같아요. 제가 가 있어야 겠어요."하고는 1인용 전기장판과 이불 하나를 챙겨들고 이사할 집으로 갔다. 퇴근해온 남편과 온기라고는 없는 집에서 전기장판 위에 누워 있으니 '이제야 남편과 애들과 오붓하게 한번 살아 보는구나.' 싶어 꿈만 같았다. 며칠을 혼자 냉방에서 지내다 정작 이사하던 날은 심한 감기로 콧물, 눈물 범벅인 나를 보고 아버님은 "보일러 연결을 조금만 더 늦게 해줬더라면 우리 며느리 잡을 뻔했네?" 하시면서 안쓰러워하셨다. 아버님, 어머님! 그땐 제가 참 철이 없었죠? 죄송합니다. 그리고 두 분 정말 사랑합니다.

남성숙(대구시 북구 침산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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