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있다. 배기찬(44) 동북아시대위원회 기조실장이 꼭 그 격이다. 지난 해 5월 출간한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위즈덤하우스 간)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특히 북한 핵실험 사태가 벌어지자 그 책을 찾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마치 이 상황을 예견하고 쓴 듯하기 때문이다.
'코리아…'는 현재 10쇄 상태로 2만 부 이상 팔렸다. 사회과학서적은 보통 2천 부 정도 팔리면 성공이라고 하는데 10배 판매부수이니 대박에 가깝다.
대구 북구에서 태어나 달성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고(故) 이수인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 전 의원을 사부(師父·스승이자 아버지)로 모셨다. 투철한 애국심과 후배에 대한 자상함까지 갖춘 대인(大人)이라고 평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은 선거캠프에 합류한 2000년부터.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비서실 국정과제담당 팀장을 맡았고, 17대 총선 때 대구 북구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낙마(落馬)했다. 그리고 1년여 쉬는 기간에 '코리아…'를 썼다.
'코리아…'는 동양사학을 전공한 그가 1980년대 말 한국사회연구소에서 국제관계 및 남북관계를 연구하고, 일본 도쿄대 객원연구원으로 '동아시아 패권 체제와 코리아'를, 미국 하버드대 객원연구원으로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위한 국제 협력'을 연구한 결과물을 집대성한 것.
책이 나오자 노무현 대통령이 먼저 읽고 외교관에게 일독(一讀)하도록 권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란 예감이 들게 했다.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등 참모들이 읽었고, 군장성과 통일부 직원들이 읽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도 299명 의원 전원에게 한 권씩 선물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국회의장 정책비서관으로 잠시 일하던 그를 동북아시대위원회 기조실장으로 기용했다. 책의 내용을 보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론을 역설하고 있던 노 대통령이 균형자론의 이론적 기반을 이 책에서 찾았던 듯하다.
배 실장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데 이어 인기 강사가 됐다. 국정원·통일부·국방부·육군본부 등지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한 것. 그는 "최선을 다해 썼지만 이렇게 많이 읽힐줄 몰랐다."면서 "특히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사람들이 읽고 호평해 줘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코리아…'는 지금도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고 곧 영문간이 나오고, 일어와 중국어로도 번역될 예정이다.
배 실장은 코리아의 역사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로 해석했다. 그리고 현재 세력구도를 미국의 절대 우위라며 2030년까지 현 구도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따라서 미국과의 섣부른 대립관계는 위험하다. 그렇다고 일방적인 의존관계도 부적절해 성숙된 동반자 관계가 돼야 한다고 봤다. 그 맥락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논리가 나온다.
물론 일본, 중국과도 대립관계를 만들면 안되고 우호협력하면서 북한의 급변 사태를 대비하는 한편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인식했다.
그는 "현재 정부의 외교정책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그 성과가 반기문 외교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성숙된 동반자 관계가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의 역량이 강해진 것도 있지만 미국의 세계전략이 바뀌어 의존관계가 있을 수 없다. 한미 간에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합의하고, FTA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수평적 동맹 관계의 시작"이라고 답했다.
북한 핵실험 사태에 대해 그는 중국도 유예한 미국과의 대립관계를 북한이 유일하게 설정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핵 확산을 대단히 엄격히 제재해야 하는 미국과 선군체제로 생존의 마지막 카드를 사용한 북한의 대립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대북 제재와 대화의 병행이란 참여정부의 정책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북핵사태를 둘러싼 국론분열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구한말 등 역사를 돌이켜보면 친일파-친러파, 우익-좌익, 보수-진보 간 국론분열은 결국 망국으로 이어졌다는 것.
통일한국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고 보는 배 실장은 매주 금요일 통일을 위한 금식기도를 한다. 어차피 닥칠 통일에 대해 비용론 등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조선과 고려에 이어 등장할 통일된 코리아를 이끌 인재를 육성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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