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총강도 안양 호텔서 검거…"유흥비 마련위해 범행"

'대포폰' 추적 단서확보 "자살하려 권총 훔쳤다가 맘바꿔 범행"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은행을 털고 달아났던 20대 권총강도가 범행 사흘만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국민은행 강남PB(프라이빗 뱅킹)센터 권총강도 사건 용의자 정모(29)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며 현금 9천500만원과 권총, 실탄 등을 압수했다고 22일 밝혔다.

전과 8범인 정씨는 사기와 절도 등 6건의 범죄 혐의로 수배를 받아왔으며 검거 직후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구체적인 범행 경위와 공범 여부 등을 보강 조사한뒤 23일 오후 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 사격장·은행 연쇄 범행 과정 =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실내사격장을 즐겨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씨는 서울 양천구 목동 한 실내사격장에 전화를 걸어 "사격장을 홍보해 일본인 관광객들을 유치해 주겠다"며 업주를 속였다.

18일 오후 이 사격장을 방문한 정씨는 홍보용 촬영을 하겠다며 권총과 실탄을 사격대에 진열하게 한 뒤 사격장 업주에게 물을 한 잔 달라고 요구, 업주가 물을 가지러 간 사이 오스트리아제 9㎜ 권총 1정과 실탄 20발을 훔쳐 달아났다.

정씨는 20일 오후 3시55분께 역삼동 국민은행 2층 강남PB센터를 찾아가 "8억원을 예치하고 싶은데 이율 등 자산 관리에 대해 지점장과 상담하고 싶다"며 직원을 속이고 상담실에서 지점장 황모(48)씨와 단둘이 만났다.

정씨는 20~30여분간 황씨로부터 자산관리에 대한 상담을 듣는 척하면서 내부 상황을 살폈고 별다른 보안 장치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갑자기 강도로 돌변, 권총과 실탄 1발을 꺼내 보이면서 "2주일 동안 범행을 준비하면서 가족과 집에 대해 뒷조사를 했다. 현금 2억원과 수표 1천만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이에 황씨는 현재 보유한 현금이 1억원 정도밖에 없다고 얘기한 뒤 직원을 불러 현금 1억500만원을 이 은행 종이 쇼핑백 2개에 나눠 담아줬다.

정씨는 황씨에게 평소 VIP를 배웅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건물 밖으로 내보낼 것을 요구, 오후 5시10분께 황씨 및 은행 직원 1명과 함께 계단을 내려와 현금이 든 봉투 2개를 들고 강남역 방면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 어떻게 잡았나 = 서울 송파구 방이동 모 호텔에서 지내던 정씨는 범행 직후 택시를 타고 강남역 일대를 한 바퀴 돈 뒤 강남구 역삼동 모 모텔에 투숙했다.

정씨는 다음날인 21일 경기도 안양시 인덕원사거리 부근의 한 호텔로 은신처를 옮겼고 오후 6시께 서울로 다시 올라와 애인 이모씨와 함께 중구 명동에서 의복 등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은행에서 빼앗은 1억500만원 중 1천만원을 안양시에 있는 원룸의 계약금과 원룸 계약을 위한 신분증 위조, 애인 선물과 유흥비 등으로 썼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은행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정씨의 사진을 배포해 신속히 공개 수사에 나섰던 경찰은 기대했던 시민 제보가 지지부진하자 은행 강도 사건 자체가 아닌 사격연습장 권총 절도 사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경찰은 정씨가 사격연습장에 전화할 때 사용한 '대포폰'을 단초로 탐문 수사를 벌였고 대포폰 판매업자가 택배직원을 통해 방이동 모 호텔에 휴대전화기를 배달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경찰은 애인 이모씨가 이 호텔에 자주 출입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사실을 확인, 이씨를 통해 정씨의 신원을 밝혀내 검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씨가 범행 당일인 20일 범죄 발생 장소와 가까운 숙박업소에서 하룻밤 묵었고 21일엔 애인과 함께 서울 한복판에서 쇼핑을 즐기기도 해 경찰의 검문검색 등 초기 대응이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 범행 동기 = 정씨는 검거 직후 범행 동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인간으로서 못 할 짓을 한 게 있어 자살을 하려고 권총을 훔쳤는데 자살은 못 하고 범행에 사용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1남2녀 중 장남으로 열흘 전쯤 모친이 폐암으로 숨졌으나 경찰 수배중인 상태라 장례식장에 가지 못한 것을 괴로워해 권총 자살을 결심했다는 것.

정씨는 자살에 사용할 권총을 훔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목동의 한 실내사격연습장을 발견해 일본인 여행객을 유치해주겠다고 업주를 속여 권총 1정을 훔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씨는 막상 권총을 손에 넣자 자살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권총으로 은행을 털어 방도 얻고 정착해서 사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며 맘을 고쳐먹고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 정씨는 국민은행 강남역지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2층 PB센터를 발견해 문틈으로 내부 모습을 염탐한 뒤 사람이 많은 일반 창구보다는 특정 고객만 관리하는 PB센터가 더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 범행을 저질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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