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나이값 좀 합시다

영국의 어느 왕자가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었으나 21세가 되기 전에는 부모 허락 없이 맘대로 결혼할 수 없다는 왕실의 규정 때문에 계속 나이가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형인 왕세자는 3년 전 18세 때 벌써 왕위를 이어받아 왕으로 임명됐다. 왕자는 불평했다. 왜 왕이 되는 데는 18세만 돼도 되는데 결혼은 21세가 돼야 허락되느냐는 불만이었다. 그래서 왕실의 어른에게 항의를 했다. 그러자 스승 같은 그 어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말이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는 18세만 돼도 가능하지만 한 가정과 사회를 이끄는 家長(가장) 역할을 하는 데는 적어도 21세가 넘어야 제대로 해낼 수 있으니까 그랬을 거다."

나이에 맞게 모든 생각과 행동 그리고 자기의 결정과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강조한 영국 왕실의 교훈담이다.

우리 법무부도 지난 주 결혼연령을 18세로 통일키로 하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면서도 아직 20세가 되기 전에는 여전히 부모와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제한은 그대로 둘 모양이다. '결혼생활을 하려면 고교 교육은 마치는 정도의 사회'경제적 성숙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판단에서다.

중세 영국 왕실 스승의 논리와 맞닿는다. 결혼이든 정치든 모든 결정과 행위에는 나이에 따라 일정한 책임과 능력이 뒤따른다는 얘기다. 이번 결혼연령 법 개정 뉴스를 접하면서 그 법안을 개정할 국회의 일부 여당의원들의 행동거지를 보면 과연 '나이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들이 영국 왕실 스승의 가르침대로 '나이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결정과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뜻이다.

우선 북핵문제만 해도 '핵 공격의 타깃은 우리(남한)가 아니다'고 호언장담하며 제 발로 찾아 들어가 춤판을 벌이는 稚氣(치기)가 그렇다. 그들이 춤판을 벌이기 하루 전 북한의 군부 실세 장성(이찬복 중장)은 '미국이 계속 굴복을 요구할 경우 전쟁을 피할 수 없고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1차 공격 타깃은 분명히 남한임을 공개적으로 공언한 것이다. 우리가 춤이나 추고 있을 때 미'중'일'러 지도급 인사들은 이리뛰고 저리뛰며 절제된 언행과 치밀히 계산된 외교적 수사를 통해 실용주의적 국익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상황이 그런데도 춤판이라.

그 춤판이 UN과 핵협상에 어떤 외교적 파장을 줄지 반핵여론에 어떤 반감과 갈등을 초래할지, 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가 어떤 것일지 모르고 있는 철부지들이다.

나이값을 제대로 못해 보이는 인물들은 금강산에서 춤을 춘 사람들 뿐 아니다. 사표까지 낸 마당에 스스로 물러나면 나라가 조용할텐데 끝까지 오기로 밀어붙이는 헌법재판관 얘기나 현직 대통령도 임기 끝날 때가 다 돼가는 마당에 물러난 전직 대통령이 한두번 조언은 모르되 곳곳에 나서서 햇볕이 어떠니 저떠니 하고 다니는 것도 '나이값' 입방아에 오를 만한 처신이다.

세상일엔 가만히 있는게 더 도우는게 될 때가 더 많다. 진정으로 남북의 화해와 공동번영을 춤추고 기뻐하고 싶다면 거꾸로 지금은 전략적으로라도 춤을 참아야 한다. 춤판이나 햇볕 선전 대신 현실적 국익을 위해 외세열강들과 지혜싸움을 겨루는데 단합된 국력을 모아야 나이값이라도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코앞에 핵을 두고도 춤이나 추며 핵분열을 일삼는 철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아이들에게는 18세까지 결혼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법을 따지는 것은 나이값도 못하는 염치없는 일이다. 김근태 의장, 김대중 님, 전효숙 님… 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정길 명예주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