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 영화-가을로

연인의 흔적을 찾는 길에서 만난 여인은?

1995년 6월29일. 서울 한복판에서 갑자기 백화점이 무너졌다. 그런데 백화점 지하에는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후 11년. 대한민국은 쉽게 그 사실을 잊었지만 그 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살아남은 남자에게 그 기억은 여전히 상처다. 영화 '가을로'는 그리움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현우(유지태)는 오랜 연인이었던 민주(김지수)와의 약혼을 앞두고 있다. 낯선 아파트로 민주를 초대해 청혼도 했다. 이제 결혼을 앞두고 한창 서로에 대한 사랑이 무르익어가던 어느 날, 결혼 준비를 위해 함께 쇼핑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현우는 급한 일이 생겨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 가기 싫어하는 민주를 억지로 백화점으로 보낸다. 일을 마치고 백화점으로 들어가려던 현우 앞에서 갑자기 백화점이 붕괴된다. 마치 거짓말처럼 무너져내린 백화점 잔해를 헤매며 현우는 민주의 흔적을 찾아 헤매지만 끝내 민주는 보이지 않는다.

가지 않으려 했던 민주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현우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괴로워한다. 그 때 한권의 노트가 현우에게 배달된다. 그것은 민주가 현우를 위해 준비한 특별한 선물로, 표지에는 '민주와 현우의 신혼여행'이라고 씌어 있다.

현우는 민주가 적어둔 그 길을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 가는 곳마다 민주의 체취가 현우를 괴롭히는데, 노트에 적힌 여행 코스에 갈 때 마다 한 여자와 마주친다. 그녀는 민주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읊조리곤 해, 현우를 놀래킨다.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일까.

이 영화는 민주가 현우를 여행지로 안내한다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온갖 아름다운 여행지들이 총출동한다. 우이도의 모래 사막, 울진 불영사, 내연산 12폭포, 소쇄원 등 가을풍경이 스크린 가득 찬란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민주가 적어놓은 글과 여행지를 차례로 따라 가다 보니 다소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리고 반전의 느낌이 약하다. 낯선 여자 세진(엄지원)의 정체는 영화 초반부에 너무 쉽게 관객들에게 들켜버리고, 그녀 존재에 대한 신비감은 옅어진다. 가을의 정취를 스크린으로나마 느끼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영화. 하지만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 114분, 15세 관람가. 26일 개봉.

최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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