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그린벨트땅 사재기 열풍…시지·고산에 가보니

"토지 90%는 이미 외지인 소유"

24일 낮 대구 수성구 고산 일대의 지하철 2호선 대공원역~고산역 1km 구간. 20여 개의 부동산 사무실이 줄지었다. 하지만 '아파트' 대신 '땅'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붙어 있어 여느 부동산 사무실과는 다른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성구 고산·시지 주변의 개발제한구역을 집중 거래하는 곳들이다.

땅값이 가장 높다는 ㅅ마을 입구. 초입부터 부동산 열풍이 진하게 느껴졌다. 밭 경계에 쳐놓은 울타리에 '땅 사실분', '땅 파실분', '토지 매매' 등의 전단지가 수북하게 붙어 있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외지사람들이 마을 주변 토지를 모두 장악했다는 것. 포도를 따던 한 주민은 "1970, 80년대만 해도 100가구가 훨씬 넘었던 마을 사람들이 지금은 20가구 안팎까지 줄었다."고 했다. 이 가운데 토박이들은 10가구 미만이고 그나마 작은 땅이라도 가진 토박이들은 그 절반도 안된다고 했다.

토박이 주민들은 "대부분 부동산값이 조금 오를 때 땅을 모두 팔고 떠났는데 그 뒤에도 땅값이 이렇게 올라갈 줄 몰랐다."며 "땅을 다 팔고 나서 '그래도 농사밖에 할 줄 아는게 없다'며 소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지난 2004년 이후 이 곳 땅 값은 2, 3배까지 올랐다는 게 주민 및 부동산 업자들의 얘기다. 참여 정부가 그린벨트 지역에 대단위 임대주택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뒤부터였다. 여기에다 시청사, 법원 이전 등 온갖 개발 계획과 관련한 소문이 무성해지고, 지난해엔 혁신도시 입지 얘기까지 떠돌면서 땅값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네 한 부동산업자는 "수성구에 공기업이 이전해 들어온다면 여기밖엔 없다는 기대가 높았던 게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2004년만 해도 100만 원선이었던 평당 땅값이 지금은 200만~300만 원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도 땅값 오름세는 그칠 줄 몰랐다. 고질적인 '투기세력' 때문. 지난해 말부터는 해제 지역 주변의 다른 개발제한구역까지 해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는 형편이다. 주민들은 "추가 해제 후 층수 제한을 없애고 민간 개발하겠다며 땅 지주들에게 토지매매 안내문까지 보낸 사업자도 있었다."고 했다. 그 후 평당 30~40만원에 불과하던 주변 개발제한구역 땅값도 100만 원 안팎까지 올랐다는 것.

토박이 주민들을 더욱 속상하게 하는 것은 땅값 상승에도 불구, 실질적인 이득은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3만 평 남짓되는 전체 부지 가운데 토박이들이 가진 땅은 3천 평 정도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같은 수성구에 사는 학계, 관계, 법조계 등 사회적으로 이름이 난 50, 60명이 사갔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들은 보통 '투기꾼'이 아닌 '투자자'로 불린다고 했다. 이미 오를대로 오른 개발제한구역 땅을 사들이는 만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에 정당한 투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외지사람 중에는 개발제한구역내 토지거래허가 규정을 위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 현행법상 개발제한구역내 땅을 사면 주거용은 주거용으로, 농사용은 농사용으로 반드시 이용해야 하지만 외지사람들이 이 곳에 이사를 와 살거나 농사를 짓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업자들은 "개발제한구역 투자자들은 평균 2억~3억 원 이상 땅에 돈을 묻어 놓는데 수백만 원 정도의 벌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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