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로 내려와 시내에 나갈 일은 서점에 들르는 것 외에는 드문 편이다. 언젠가 모 방송사에서 '아름다운 상점'으로 선정된 곳들을 소개하면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대부분의 가게가 시내 중심, 즉 동성로에 모여 있었고 자연스레 이 거리에 관심을 가졌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의 하나 '동성로'. 과연 그 기대치의 역할을 하는 거리인가?
동성로의 상점들은 제각기 목소리를 내느라 여념이 없다. 형형색색의 간판과 장식물이 걷는 이의 시선을 어지럽게 하고 점주와 아르바이트생들은 스피커의 볼륨을 높여 가며 피켓을 들고 상품 선전에 여념이 없다.
동성로를 걷는 사람들은 정신이 없다. 여기저기에서 떠들어 대는 마이크 소리에 귀가 멍하고 이리저리 사람들을 피해 길을 재촉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쇼윈도의 마네킹과 화려한 상품에 잠시 시선을 주다가 노점상에서 액세서리 하나 고르고 떡볶이로 배 채우고 돌고 돈다. 아무리 돌아 다녀도 마땅히 머무르고 쉴 공간이 없다. 마지못해 음식점이나 커피숍에 들어가 시간 때우기에 들어간다. 큰 유리창이 있는 창가에서.
동성로에도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대구백화점 앞 입구 계단이다. 남의 가게 앞에서 멀뚱멀뚱 스스로가 백화점 쇼윈도의 마네킹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다. 입을 꼭 다문 모습이 마네킹보다 더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9월 초쯤 동성로에 나갔다가 대구백화점 앞에 분수대가 있는 것을 보고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그나마 길의 응결점이라 할 수 있는 몰(Mall)이 형성된 곳으로 공간은 작으나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런 곳에 묵직한 덩어리의 분수대가 사람들의 시선을 가로막고 주변의 공간을 잠식하고 있었다.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대구 시민의 수준을 적절히 대변하고 있는 대리석의 분수대는 말이 없었다. 이게 무슨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 '동성로'란 말인가? 이건 아니잖아!
10월 다시 찾은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는 분수대가 없어졌다. 예전의 그 육중한 분수대가 철거된 것이다. 주변의 도로가 파헤쳐진 상태로 보아 얼마 되지 않은 사건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누가 철거한 것일까? 이번엔 어떤 덩어리가 들어올까? 아님 정말 광장의 기능과 문화의 콘텐츠가 담겨지는 공간으로 탈바꿈 하는 걸까?
대구의 동성로는 신도시 계획처럼 책상 위에서 몇 년 뚝딱 거려 나온 도로가 아니다. 수백 년 시간의 흔적과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정체성과 고유성이 있는 거리이다. 이런 거리를 거닐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도시는 시행과 착오를 반복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유기체적 실체이며, 삶을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도시 속에서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가 살아 있는 길이 되기 위해선 단순히 이동하는 기능 뿐만아니라 걸으면서 즐기고 공유하고 사색하는 삶이 묻어나는 길이 되어야 한다.
김경호(아삶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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